안 늙고 안 아프고 안 죽는 법 배우는 것이 불교 활산
성수스님
성수(性壽) 스님은 192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난 성수 스님은 여덟 살 때부터 원효대사 같은 도인이 될 꿈을 꾸다가 44년 부산 내원사에서 성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 48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조계사, 범어사, 해인사, 고운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이다.
스님은 황대선원, 해동선원, 법수선원 등의 도량을 열어 ‘대한민국의 인재’를 만드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있다.
“알고 싶은 마음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서 지금 당장 목을 잘라 바칠 정도로 간절하게 물어야지.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물어봤자 천번 만번 일러줘도 그 소리가 귀에 안 들어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에 눈에 눈물이 뚝뚝 흐르고, 알고 싶은 그 심정에 푹 젖어야 돼.”
올해 세수 83세인 성수 스님은 산청 해동선원(海東禪源)에 계셨다.
‘묵은’ 절 땅 대신 대한민국의 인재를 길러낼 ‘햇’ 땅을 찾던 스님께서 폐교를 인수해 ‘새끼 사자’를 기를 선원으로 가꾼 곳이다.
넓은 운동장을 가로 질러 차를 세우고 마당에서 풀을 뽑던 보살의 안내를 받아 스님께 인사를 여쭈었다.
“기자들이 온다고 해서 불을 때놨지.” 에어컨을 가동시켜 놓았다는 말씀이시다.
수박이 차려진 쟁반이 들어오고, 스님은 한 조각 먹고 시작하라며 수박을 권하셨다.
“절은 뭐하는 곳이며 나는 왜 절에 다니는가 하는 것을 알고 다녀야 한다고 늘 강조하시는데 왜 절에 다니고 절은 뭐하는 곳입니까?” “
안 늙고 안 아프고 안 죽는 법 가르쳐 주는 곳이 절이야.
안 늙고 안 아프고 안 죽는 법 배우러간다는 것이 분명히 서면 물을 말이 많아.
일주문에 들어갈 때도 왜 일주문이냐? 기둥 두 개로 문을 세워놨거든.
내 중심이, 목적, 포부와 기대와 희망, 중심이 딱 선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야.
중심이 흔들리는 사람은 일주문에 들어갈 자격이 없어.
또 대웅전만 해도 대웅전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돼.
마음속의 팔만사천 번뇌를 다 항복받은 완전무결한 분이 있는 곳이 대웅전이야.
그러니 대웅전에 들어갈 때는 팔만사천 번뇌를 다 떼놓고 들어가야지,
그걸 가지고 들어가는 놈은 법당에 천년만년 들어가도 소용이 없어.
이 뜻을 알고 가면, 번뇌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법당문을 열지 못하고 울어야 돼.
자기가 아는지 모르는지 되는지 안 되는지 확실히 검토를 해가지고 들어가면 부처하고 대화가 되는 거라.
영생불멸(永生不滅)하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진아(眞我) 세계에서 사는 어른하고 대화가 척 되면 천하만물은 무비선(無非禪)이요,
세상만사는 무비도(無非道)로다.
천하에 선 아닌 게 없고 세상만사는 도 아닌 게 없는 그 재미가 오도독 오도독 하도록 살게 되는 거라.”
기대와 포부가 확실하면 물을 말이 참 많다고 했다.
이는 스님의 이력만 살펴봐도 쉬이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원효대사와 같은 도인이 되겠다는 포부 하나로 열아홉 살에 집을 떠나온 스님은 명안종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도를 물었다.
“목을 바치고라도, 또 하루를 살아도 알고 살아야겠다는 포부가 머리까지 차서는 죽을 고비를 네 번이나 넘겼어.
그냥 ‘성수’가 된 게 아니야.
효봉 스님하고는 칠일 만에 도를 해결하지 못하면 맞아 죽기로 서약서를 쓴 사람이야.
효봉 스님은 조실 자격 없다고 욕보이고 다시 해인사로 가서 공부를 하려고 하니, ‘자격 없다’고 입방 허락이 안 떨어지는 거라.
그래서 자격 있는 효봉 하고 자격 없는 성수하고 누가 나은지 보자하고 변소에 가서 구멍에다 장작개비 세 개 걸쳐놓고 거적 덮어쓰고 요놈의 효봉 때려죽이고 내가 조실지하고 악을 쓰고 앉아있었어.
배고픈 것도 추운 것도 잊어버리고 삼일동안 앉아 있었지.
그때는 분심이 나서 밥을 입에 퍼 넣어도 안 넘어가.
그렇게 육 일만에 펄펄 끓던 열이 스윽 내려가고 철이 나서 ‘효봉 때려 죽인다’는 생각이 다 바꿔져가지고 ‘효봉 스님 고맙습니다’하고 절이 나와.
그때 그 고마운 마음이 사무쳐서 내가 지금도 절이 곱게 나와.
효봉 스님의 자격 없다는 그 말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철이 언제 났겠나 하고.
그때부터 입을 딱 다물고 숨어서 살았어.
이처럼 죽을 고비도 넘기고 장벽도 부딪쳐야 철이 드는 거야.
대실패가 대성공의 어머니라 했잖아.
도를 닦으려면 많은 실패를 해야 돼.”
스님의 안목을 넓혀준 죽을 고비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찾아오기도 했는데 이는 ‘알고 싶은 마음이 사무치면 돌부리 하나라도 스승 아님이 없음’을 또 다시 일깨워주는 일화이다.
“내가 천하의 선지식한테 다 가서 질문해도 꼼짝을 못하니까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하고 내가 나 혼자 좋아서 사나흘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파.
그렇게 다니다가 하루는 골목을 지나가는데 한 아이가 ‘저 중 봐라’ 하는 거라.
한 명이 중 봐라 하니까 주위 아이들이 모두 불알 내 놓고 서서 손뼉을 치면서 중 봐라 중 봐라 하는데 거기서 내가 항복을 받았어.
가짜 중이다 이거야.
덜 익은 중이다 이거야.
아이들 그 말 듣고 가사장삼을 몸에 댈 자격도 없고 시주 밥 입에 댈 자격도 없다는 생각에 가사 장삼 불태우고 밥숟가락 놓고 산 속에 들어가서 3년을 풀만 뜯어먹고 살다가 나오니까 그때야 비로소 철이 좀 났어.
그래서 전국에 법문 한다하면 찾아가서 들어보면 다 나를 위해서 법문 하는 거라.
부처님 말씀도 한마디도 내 버릴 것이 없어.
경책도 읽어보면 예전에는 그 말이 그 말이다 생각했는데 어린애한테 한방 맞고 경책을 다시 읽어봤더니 아주 금쪽같은 귀한 말씀이고, 맛이 오도독 오도독 나는 말이야.
그래서 철이 든 거야.”
벌거숭이 어린애를 스승삼아 한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스님에게 또 한번 크게 죽는 계기가 찾아왔다.
“토굴 지어서 살고 있으니 자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귀찮아.
그래서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조용히 실컷 공부하겠다고 원을 세우고 천성산 제일 높은 골짜기 안에 비어 있던 토굴로 들어갔어.
불을 지피고 새벽이슬에 젖은 옷을 벗어 방에다 널어놓고는 ‘이제 드디어 내 살 데를 왔구나’ 하고 턱 앉아 좌선을 하니 너무 재미가 나는 거라.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인데, 발자국 소리가 나서 젖은 옷을 도로 주워 입고 있으니까 어떤 여자가 나물바구니를 들고 나타나더니, ‘이 깊은 산 중에 혼자 와서 삽니까?’하고 물어.
그래서 조용한데 공부 좀 실컷 하려고 왔다고 사실대로 얘기했거든.
그 말끝에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 하고 되묻는데 그만 할 말이 없는 거라.
입이 안 떨어져.
멍하니 앉아 있으니 그 여자는 물러가 버리고 몇 시간을 앉아 있었는지 모르게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로 좋은 말을 들은 거야.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럽나? 어디가면 안 시끄럽냐 이거지.
자기가 쉬어야지.
덜 마른 옷을 그대로 입고 도로 걸망지고 돌아와서 그 뒤부터는 사람이 와서 얘기를 한다든지, 똥을 누든지, 내 할 일 하면 된다 이거야.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 하는 그 말이 평생의 스승이 된 거야.” 말씀 내내 스님은 발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발심이 분명해야 돼.
도사가 되고 싶으면 도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도사가 되느냐 묻고 배워야 되고, 어른이 되려면 어른 짓 하는 법도 배워야 돼.
묻고 배울 게 참 많아.
도를 배우러 왔으면 도를 배워서 알고 찾아야 되는데 도를 모르고 도 닦는다고 앉아 있으니 도를 묻고 배우는 놈이 없어.
목적 희망이 없는 사람은 안 되는 거야.
불공 기도 하는 것이 불교가 아니야.
안 늙고 안 아프고 안 죽는 법 배우는 것이 불교야.”
스님은 불교를 바로 알면 비로소 진정 사는 길, 즉 자기가 자기를 죽이지 않는(不殺)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살 줄 알고 살아야 돼.
늙으면 가야 된다, 가야 된다 하면서도 갈 곳도 모르지, 갈 길도 모르지.
가야 될 놈이 누군지도 모르잖아.
죽어서는 아우성을 쳐봐야 소용없어.
살아 있을 때 갈 곳도 갈 길도 알아야 되고 갈 놈이 누군지도 만나봐야 돼.
자기가 자기를 만나 춤을 한번 추는 것이 급선무야.” 스님은, 요즘 사람들은 자기 밥 자기가 먹고도 남한테 욕먹을 헛짓을 하고 산다며 정신을 차리고 수행 정진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종교를 믿는다고 하지만 종교가 뭔지, 믿는다는 것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천지야.
종교는 높을 종자고 교는 변함없는 진리야.
변함없는 진리를 배우러 가는 곳이 절이야.
믿는 것은 따라가는 것을 말해.
우리말로 하면 본보러 가는 거야.
흉내를 내야 해.
부처님 되려는 흉내를 내면서 하루에 세 번 5분씩이라도 자기가 자기한테 속지 않고 당당하게 앉아보란 말이지.
그리고 참선(參禪)한다고 하면 참(參)자가 무슨 자인지 선(禪)자가 무슨 자인지 이 두자의 뜻을 알고 시작해야 돼.
이마를 닦는지 손을 닦는지 궁둥이를 닦는지 모르고 닦아라 하는 놈도 고얀 놈, 그것도 모르고 닦는 놈도 바보 온달이야.
욕을 해도 괜찮아.
욕을 해야 뿔따구가 나서 찾아오지.
칼을 가지고 목 베러 오는 놈이 있으면 안고 춤을 한번 추겠어.”
■성수 스님의 ‘오도독 건강비결’ 팔순이 넘었어도 병원 한번 안가고 약 한번 약 먹었다는 성수 스님의 건강 비결은 뭘까?
몸이 편치 않는 것도 모두 자기 마음에 달렸다”고 강조한 스님의 건강 비법은 “탐, 진, 치 삼독 세 도둑놈한테 끌려서 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도둑한테 안 속으니까 재미가 오도독 오도독 나게 살거든.
찌그려봐라.
그러면 주름살이 생긴다.
우리도 이차돈처럼 흰 피도 만들 수 있고 독한 피, 더러운 피도 만들 수 있거든.
아침부터 이 놈의 새끼야 하고 악을 쓰면 독한 피가 만들어지고 화내고 지독한 소리 하면 소화도 잘 안되고 절로 병이 나게 돼.” 또 한 가지 비법은 남 걱정, 남 탓 안하고 내 걱정 내 탓을 하면 사는 것.
“대한민국에 욕이 석 섬이 생겼는데 한 섬은 대통령 아저씨가 다 먹고 한 섬은 국민이 나눠 먹고 나머지 한 섬은 내가 다 먹었어.
허허.
그래도 내 입으로 한번도 욕 안했어.
욕 안하고 사는 것도 보통 복이 아니야.
욕하면 우선 자기부터 괴롭잖아.
욕 안하고 재미가 오도독하게 살면 몸뚱이도 재미가 오도독 나고 주름살도 없고 나이든 사람이든 어린 사람이든 모두 좋아하게 돼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