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한권의 경전이 있으니…
-법정스님-
我有一卷經 (아유일권경) 不因紙墨成 (불인지묵성) 展開無一字 (전개무일자) 常放大光明 (상방대광명) 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
펼쳐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
불경에 있는 말이다.
일상의 우리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써만 어떤 사물을 인식하려고 한다.
그러나 실체는 저 침묵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 데에 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허심탄회한 그 마음에서도 큰 광명이 발해진다는 말이다.
참선을 하는 선원에서는 선실 안팎에 ‘묵언默言’이라고 쓴 표지가 있다.
말을 말자는 것.
말을 하게 되면 서로가 정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집단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시와 비를 가리는 일이 있다.
시비를 따지다 보면 집중을 할 수 없다.
선은 순수한 집중인 동시에 철저한 자기 응시이다.
모든 시비와 분별망상을 떠나서만 삼매三昧의 경지에 들 수 있다.
말은 의사소통의 구실을 하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잡음의 역기능도 하고 있다.
구시화문口是禍文, 입을 가리켜 재앙의 문이라고 한 것도 그 역기능인 면을 지적한 것이다.
어떤 선승들은 3년이고 10년이고 계속해서 묵언을 지키고 있다.
그가 묵언 중일 때는 대중에서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수도자들이 이와 같이 침묵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침묵이라는 여과 과정을 거쳐 오로지 ‘참말’만을 하기 위해서다.
침묵의 조명을 통해서 당당한 말을 하기 위해서다.
벙어리와 묵언자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