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결과는 한뿌리서 나온다
-보산스님-
환경재앙을 바로보자 지난 겨울은 무척 춥고 폭설도 많이 내리고 구제역으로 인하여 많은 축산농민과 공무원 등이 방역활동 하느라 추운 겨울을 힘겹게 보내야 했고 아직도 구제역 방역은 계속되고 있다.
춘삼월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든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닫았던 문들을 열어 젖히며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와 폭설을 견디고 다시 돋아나는 생명들을 바라 볼 때면 생명의 경외감 마저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들 걱정들을 한다.
이게 무슨 징조냐 면서 어찌하여 이런 기후 변화를 겪는지에 대해서 환경전문가 기후학자 등등 많은 전문가 그룹들의 의견 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환경전문가들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분석할 것이고 기후학자 들은 기후과학적인 측면서 분석 할 것이며 신을 믿는 이들은 신의 뜻의 측면에서 볼 것이며 우연을 믿는 이들은 우연이란 측면에서 볼 것이고 인과를 믿는 그룹은 인과의 측면에서 볼려고 할 것이다.
온 우주가 나와 둘 아닌 하나임을 자각해야 해결 불자들은 이러한 환경재앙을 어떻게 바라 보아야 할까? 환경(環境, environment)은 모든 생물들을 둘러싸는 외위(外圍)를 말하고 있다.
자연의 모든 것이 환경이라 말할 수 있다.
나를 중심으로 한다면 나를 포함한 모든 것 이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나와 나 아닌 생명체는 동일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이 저지르는 포악한 자연파괴는 나를 파괴하는 것이요 나에게 포악하게 하는 등식이 성립된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살피신 것이 연기의 법칙이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라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든 물질이든 서로 인연에 의하여 화합하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 지는 것이 연기의 법이다.
그래서 불법을 다르마(Dharma, 法) 또는 법칙(法則)이라고 하고 있다.
우리들도 환경 속에 살고 환경 속에 죽고 있다.
환경이 죽고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환경이 죽는다면 우리의 삶이 어떨까.
이것이 죽으면 저것도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정복의 논리,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가 아니라 평등의 논리이며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이 붓다의 깨달음인 연기법이다.
우리들의 일상은 환경을 떠나서 이야기 할 수 없다.
삶을 생각할 땐 생활환경, 수행자들의 수행을 생각할 땐 수행환경, 교육을 생각할 땐 교육환경, 정치를 생각할 땐 정치 환경, 처녀 총각결혼할 땐 가정환경을 살피게 된다.
그것은 환경의 중요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가 있다.
하물며 자연 환경이야 더 말 할 수 있으랴.
에너지 과소비로 대기오염, 폐수배출로 수질오염, 종합적 으로는 환경오염으로 우리들의 삶은 점점 고통스럽고 숨이 막혀 오고 질병은 늘어나고 환경을 정화하는데 값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있다.
어릴 적에는 개울물을 마음대로 마셨지만 지금은 석유보다 비싼 것이 물값이다.
바다의 오염은 어족자원의 씨를 말리고 대기환경의 오염은 지구의 사막화를 재촉하고 있다.
환경 재앙은 결국 산업화하면서 스스로 뿌린 업보다.
온 우주가 나와 둘 아닌 하나임을 자각하고 자연과 나와 둘 아님을 자각하고 한 티끌에 시방세계가 있음을 알아서 작은 것 부터 소중히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이 환경을 지키고 재앙을 예방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환경과 생명이 하나임을 깨닫고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환경운동이야말로 수행 가운데 중요한 수행이 아닐까.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