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극복 인왕백고좌 법회 ‘소의경전’
법화경, 금강명경과 함께 호국삼부경
재앙은 예고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늘 불의의 재앙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체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적인 재해든 인재(人災)든 간에 사고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재해를 수습하는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대처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수재를 겪습니다. 이때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의 바쁜 일도 제쳐 두고 달려와 수재민을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소위 알량한 선량(정치인)들이 찾아 옵니다. 그들은 대체로 봉사는 안중에도 없고 단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 전부인 듯한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도움이 되기는 커녕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는 어느 수재민의 얘기가 여운을 남깁니다.
이 나라의 위정자들의 하는 짓들이 성실치 못하여 그런지 재난이 끊어질 듯 하면 또다시 새로운 재난이 생겨나곤 합니다. 이럴 때 우리의 선조들 같았으면 바로 국난극복을 위한 대법회를 열었을 것입니다. 바로 ‘인왕백고좌법회(仁王百高坐法會)’와 같은 것을 말입니다.
요즘 들어 ‘화엄경백고좌법회’나 ‘법화경백고좌법회’는 곳곳에서 부쩍 성행하는 모습이지만 나라를 위한 ‘인왕백고좌법회’가 열렸다는 소문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라나 고려시대 때만 해도 나라에 어려움이 생기면 출가자나 재가자를 막론하고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백 분의 불보살상을 봉안하고, 백 개의 등(燈)과 향, 그리고 백가지 꽃을 올린 후에 백 명의 법사를 초청하여 백일(百日) 동안 법회를 여는 게 상례(常例)였고, 그때 소의경전(所依經典)이 바로 《인왕경》이었던 것입니다. 즉 국가가 혼란하여 커다란 재난을 당했을 때, 바로 이 경전을 독송하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인왕법회’를 시행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인왕경》의 제작은 인도에서가 아닌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어쨌든 《인왕경》에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인왕반야바라밀경》이 있고 불공(不空)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이 있는데, 둘 다《인왕경》 혹은 《인왕반야경》이라고 줄여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명(經名)에 보이는 인왕(仁王)이란 호칭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자격을 갖춘 임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인왕은 반야로써 나라를 지킬 수 있고, 외국의 침략을 이길 수 있는 힘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도자든 혹은 지도자가 아니든 간에 반야를 증득하고 체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국가에서 이러한 법회를 주도했다는 것은 그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불교가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이 경전의 근본종지로는 삼종(三種)반야를 들고 있는데, 먼저 반야공(般若空)이 곧 제법실상의 실제 모습이라는 실상(實相)반야와 주관적인 지혜인 관조(觀照)반야, 그리고 적용하는 법이 있으면 반드시 그 대상을 표현해주는 문자가 있기 마련인데 그 표현된 문자인 문자(文字)반야가 그것입니다.
비유컨대 허공에 걸려있는 밝은 달은 실상반야, 거기서 발현되는 광명은 관조반야, 물에 비치는 달(水月)은 문자반야에 해당하고 또한 실상반야는 자리행에, 관조반야는 이타행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이 경전의 구성은 2권 8품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은 제5품 호국품(護國品)으로서 전체 경명에서 제시하는 ‘호국’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먼저 석존 당시 인도의 여섯 국왕 특히 파사익왕이 중심이 되어 석존과 문답을 시작하는 광경이 서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반야가 지켜져야 하는 이유와 반야에 의해 지켜지는 국토 즉 내외호(內外護)를 밝히고 부처님께서 국왕들에게 반야바라밀의 수지(受持)를 당부하자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대중들은 정법을 호지(護持)할 것을 맹서하고 환희하는 내용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왕경》은 나라의 안정을 위한 내용이기 때문에 천태대사를 비롯하여 역대의 고승들이 《인왕경》에 대한 주석서를 남기고 있고, 또한 《법화경》,《금강명경》과 함께 호국삼부경(護國三部經)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유도 이런 점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이 경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요컨데 《인왕반야경》은 국가를 정당하게 수호하고 길이 번영케 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천명하면서 그 근본방책을 불교의 입장에서 제시하고자 한 경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