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의 도리 담은 삶의 지침서
부처님 전기 통해 인연공덕 선양
어떤 불교학자는 “인과가 무섭지도 않느냐?”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무섭다고 했습니다. 모르긴 하지만 그는 불교가 자업자득의 가르침인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착한 사람이 계속 불행한 일을 마주치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불행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승승장구하는 경우를 보고 크게 실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조용히 《인과경》을 한번 읽어보십시오.
《인과경》은 부처님께서 당신의 전기(傳記)를 설하면서 인과의 실상을 밝혀 놓은 독특한 경전입니다. 우리들 자신도 때로는 존경하는 분의 과거를 알고 싶어하듯이 부처님의 과거세에 지은 인연에 관하여 제자들이 듣고 싶어 했기 때문에 설법하신 것입니다.
이 경의 원래 경명은 《과거현재인과경》이라 되어 있지만 이를 줄여서 《인과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의 업인(業因)으로부터 그 결과인 과보를 현세에서 받으면서 또다시 미래의 과보를 현세에서 짓고 있다고 하여 《삼세인과경(三世因果經)》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생들이 받고 있는 과보가 천차만별인 것은 다 전생에 지은 선악의 업보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에서 《선악인과경(善惡因果經)》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경전이 한역된 것은 5세기 중엽으로 구나발타라(求那拔陀羅)삼장이 4권본으로 역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祇園精舍)의 드넓은 도량에 모인 수많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과거생으로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1권은 연등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적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선혜라는 선인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혜는 진흙 땅을 걸어가시는 연등불을 보고 자신의 옷으로 진흙 땅을 덮고 그래도 부족하게 되자 머리카락을 그 위에 깔아서 연등불로 하여금 그 위로 지나가시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인연공덕으로 선혜는 연등불로부터 수기(授記)를 받고 수행을 하여 도솔천에 태어났으며, 그리고는 또 다시 중생제도의 염원을 세우고 사바세계에 태어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과거생의 얘기이고 나머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현세에서의 얘기입니다.
제2권은 싯다르타 태자의 성장과정과 출가하기까지의 내용을 설하고 있습니다.
제3권은 6년간의 수행과정과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를 이루신 후에 녹야원에서의 초전법륜(初轉法輪)에 대한 내용입니다. 특히 전법을 하지 못하게 한 악마의 유혹을 서술하고 있으나 이는 싯다르타의 내면적인 번뇌 즉 깨달은진리의 내용이 너무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이어서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회의를 구상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4권은 야사(耶舍)와 가섭 삼형제를 교화하신 내용을 비롯하여 사리불과 목련존자의 귀의, 교단의 유지에 대한 내용 등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과경》은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위에는 불전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아래에는 그 내용을 기록한 《그림인과경(繪因果經)》의 출현까지 보게 되어 불교미술 문화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과의 도리’를 배워 알면서도 간혹 ‘이 정도의 죄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져 마침내는 큰 물통을 가득 채우게 되듯이 비록 조그마한 죄라 할지라도 악업을 행하다 보면, 필경에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선업을 닦는 것도 이와 같이 똑같은 원리일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큰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큰 돌을, 작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작은 돌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돌을 가지고 오자 이번에는 가지고 온 돌을 모두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큰 돌을 갖고 온 사람은 쉽게 제자리를 찾아 옮겨 놓을 수 있었으나 작은 돌을 여러 개 담아온 사람들은 어디서 가져온 돌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즉 큰 돌처럼 세상에 드러난 죄업은 참회를 통해 거듭날 가능성이 있지만 작은 돌의 제자리 찾기가 쉽지 않듯이,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이 정도쯤이야”하고 묻어둠으로써 오히려 죄업을 키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과의 여실함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과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