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47년 부처님 오신 달이다. 부처님께서는 ‘여래가 가신지 2천5백년 뒤〔後五百歲〕에도 계를 받아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서 〔有持戒修福者〕 능히 이와 같은 말과 글귀(무릇 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현상이 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에 신심을 내어 이것을 진실하게 여기리라〔於此章句 能生信心 以此爲實〕’고 하셨건만 그 사람들의 수효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고 허망한 상을 좇는 사람만 늘어가는 것 같다.
세속적인 표현이지만 나라가 어려우면 충성스런 신하가 생각나고, 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가 그립다는 말처럼 이 시대 우리 사회가 하도 딱해 보여서 생각하다 못해서 ‘지금 이 땅에 부처님께서 계신다면’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얼마 전 취임 두 달을 맞은 대통령이 어느 일간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불안’하다는 솔직한 표현을 하였다고 한다. 사실 어려운 시기에 처한 나랏일을 맡았으니 보통사람이라면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ㆍ이라크 파병문제ㆍ난마처럼 얽힌 정치문제ㆍ노동조합을 비롯한 이익집단들의 대정부 투쟁ㆍ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실물경제ㆍ점점 더 어려워지는 교육현안ㆍ사회적 이념과 가치관의 혼재로 인한 사회불안 등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우선 대통령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명예와 권세의 무상함을 깨닫고 이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왕자의 자리도, 부모님의 은혜도, 처자의 사랑도 버렸듯이 조금만 마음을 비우면 정법대로 왕도정치를 한다면 금방 머리가 가벼워질텐데 말이다. 또한 가장 큰 쟁점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풀어주는 문제다.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다고 했다.
인연 따라 살면서 잠시 보관했다가 남의 손에 넘겨줄 물질이라면 많이 갖고 적게 갖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는가. 많이 가져도 고민이고 적게 가져도 고민이라면 바둥거리며, 다투고, 얼굴을 붉히는가 하면, 때로는 원수가 되면서 까지 많이 보관하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부처님의 지혜를 빌어 국민 교화에 힘을 기울이면 어떨까.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베푸는 삶, 보시하는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 준다면 집단이기주의자들이 날마다 관공서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도 사라질 것이다. 지금도 측근들이 사정당국에 붙들려가서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도덕성의 파괴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부처님의 가르치심대로 사회지도자나 공직자, 적어도 대통령의 측근들만이라도 기본적 계율을 지키게 하면 공직이나 사회 전체로 파급되어 한결 나아질 게다. 살생도, 도적질도, 사음도, 거짓말도 ….
대지는 날로 푸름을 더해가건만 우리 사회는 날로 회색빛깔이 더 짙어 가는 것 같다. 희망을 갖고 밝고 높은 서원을 세워 정진 또 정진하여야 할텐데.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3년 5월 (제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