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과 힘

봄비가 ‘국민의 정부’를 씻어가고 새봄과 함께 ‘참여정부’가 탄생하였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중심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당찬 계획과 함께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지구촌의 도처에는 건강한 나라, 희망에 찬 국민의 발목을 잡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으니 걱정이다.

가까이는 북한 핵 문제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사활이 걸려 있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이 긴박한 가운데도 국론의 통일은커녕 반미시위와 친미시위가 잇달아 일어나고, 우리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마저 경거망동을 서슴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저 멀리 중동에서는 전운이 점점 짙어가고 석유 값을 비롯한 불안스런 경제적 파고가 점점 더 높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우리 사회에서는 겁 없이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자존심을 내세우고, 능동적으로 북미간의 사태에 대해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가. 국제사회에서 먹혀 들어갈 수 있는 참된 지도력을 가졌는가. 아니면 세계 11위의 수출대국의 경제력을 믿는가. 월드컵 4강의 스포츠 강국의 힘을 믿는가. 우리가 동족이라고 믿고 있는 북한의 핵의 힘을 은근히 믿는가.

일본은 우리보다 무엇이 부족하여 미국이 눈만 흘기면 그들의 정책에 무조건 동조하는가. 영국은 왜, 독일은 왜, 왜 중국과 러시아는 제대로 할 말을 못하는가. 냉엄한 국제 사회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걸 아는가. 어제의 혈맹이 반드시 내일의 맹방이라고 믿어도 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힘이다. 힘만이 정의이자 진리다. 힘만이 우리의 자존을 지켜줄 유일한 무기다.

지금은 나라 안팎으로 무척 어려운 시기다. 허세도 부리지 말고 좀은 겸손하자. 그런 자세로 묵묵히 참고 힘을 기르자. 힘을 전제로 하지 않은 자존은 위선이요 허세다. 진정한 자존은 힘의 뒷받침이 되었을 때 그 의미를 발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3년 3월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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