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능가경(楞伽經) – 깨달음과 번뇌는 하나인가?

미혹함 벗어나는 길 밝혀
달마가 혜가에게 의발과 함께 전수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할 때 필요한 것을 얻게 되면 참으로 반가우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지듯이 사람들의 인연도 또한 그렇습니다. 저 유명한 종자기(鍾子期)와 백아(伯牙)의 만남이 그렇고, 달마대사와 혜가(慧可)의 만남도 그러한 경우라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달마대사는 선법을 펴고자 하는 큰 뜻을 품고 중국에 들어와서 양무제(梁武帝)와 만나 문답을 하였는데 무공덕(無功德)이라는 저 유명한 답변을 남긴 후, 아직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음을 알고 소림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숭산(嵩山)에서 9년동안 면벽관심(面壁觀心)으로 일관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벽관(壁觀)’바라문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법(法)을 구하고자 하는 한 청년이 찾아왔으나 달마대사는 모른 채 하였답니다. 그러자 청년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던지 눈 속에서 며칠 간을 꼼짝하지 않고 서있자 달마대사가 너의 마음을 보이라고 하였지요. 그랬더니 청년은 자신의 한 쪽 팔을 잘라서 구법(求法)의 분연한 결의를 나타냈습니다.

이렇게 단비(斷臂)를 함으로써 입문(入門)의 허락을 받고 달마의 제자가 되었는데 이 청년이 바로 훗날 선종 제2조가 된 혜가였습니다. 이때에 의발(衣鉢)은 물론 <능가경>을 전수하였습니다. 따라서 혜가 이후 수많은 선사들이 이 경전에 의지하였기 때문에 선종을 일명 ‘능가종’이라고 이름한 것도 여기에 연유합니다.

<능가경>은 현재 범본과 2가지 티베트본, 그리고 3가지 한역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최고본(最古本)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의 번역본(4권)이고, 계통적으로 분류하면 실차난타 번역의 7권본과 보리유지 번역의 10권본은 같은 계통이고 4권본은 다른 계통으로 구별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에 없는 서분(序分)에 해당하는 권청부분과 내용의 요지를 게송으로 읊은 ‘게송품’이 있는데 이것들은 6세기 이후의 첨삭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4권본은 품의 분류가 없고, 또한 ‘다라니품’과 ‘게송품’이 빠져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초기 <능가경>의 원형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로부터 <능가경>의 주제는 오법(五法), 삼성(三性), 팔식(八識), 이무아(二無我)로 보고 있으나 실은 대승경전에 나오는 여러 사상들을 종합·융화하여 유심(唯心)의 경지를 깨우치게 하는 독자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능가경>의 특징을 간추려 보면, 첫째 여래장사상과 아뢰야식을 결합시킴으로서 후대 <기신론>사상의 선구가 되고 있는 점, 둘째, 중관과 유식사상을 함께 설하고 있는데 특히 호법(護法)의 유식사상에 영향을 주고 있는 점. 셋째,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교설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방편에 불과하고, 실은 일불승(一佛乘)뿐이라는<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사상에 귀착시키고 있는 점. 넷째, 옛날부터 선경(禪經)으로 인정을 받아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육조(六祖) 혜능대사 이후로는 선종의 소의경전이 <금강경>으로 바뀌어졌지만 그러기 이전에는 <능가경>이 그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에 가진 특징입니다.

그런 만큼 <능가경>에서는 특히 선(禪)의 단계를 4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어리석은 범부가 행하는 선(愚夫所行禪), 뜻을 관찰하는 선(觀察義禪), 진여를 생각하는 선(攀緣眞如禪), 여러 부처님의 선(諸如來禪)이 그것으로 그 기준은 무아(無我)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능가경>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여래장사상과 다른 특징은 여래장과 아뢰야식이 사상적 결합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 마음이 지옥, 아귀, 축생과 같을 때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열심히 보살도를 닦아 부처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때문에 여래장과 아뢰야식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즉 좋은 쪽에서 보면 여래장이고, 나쁜 쪽에서 보면 전체가 망념을 일으키는 아뢰야식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의 진수인 자각성지(自覺聖智) 즉 자내증(自內證)의 소식, 자각의 경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상대·차별의 미망으로부터 인식을 초월할 때 부처의 자각성지를 이룰 수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능가경>의 핵심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혹의 근원은 무시겁래의 습기(習氣)로 인하여 모든 법이 오직 자심(自心)의 소현(所現)인 것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들 의식의 본성이며, 이를 철저하게 요달한다면 능취(能取), 소취(所取)의 대립을 벗어나 무분별의 세계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요컨대 미혹의 세계가 벌어지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한 것이 유식사상이라면,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가능성과 그 근거를 설명한 것이 여래장사상이고, 바로 그것을 설한 경전이 <능가경>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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