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이다. 30대 중반의 늙은 학생이 무작정 물어 물어 서당을 찾아갔다. 훈장님은 조선조 마지막 유림의 제자답게 근엄 하시면서도 인자함 그대로였다. 첫날 배운 내용은 ‘위학지서(爲學之序)’라는 글이었다. 배움의 차례라고나 할까. 학문의 순서라고나 할까.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박학지(博學之)’하고, 심문지(審問之)하며, 신사지(愼思之)하고, 명변지(明辨之) 연후에 독행지(篤行之)하라’고 하셨다. 공부하는 동안에도 가끔씩 이 글귀를 음미해 왔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숱한 문제들과 부딪칠 때 마다 항상 나는 이 차례를 ‘문제해결의 순서’라고 생각하고 매사에 적용해 왔다. 어떤 문제든지 직면하면 먼저 이 문제에 관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자세히 모르거나 의심나는 부분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묻고 자문을 구한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생각하고 또 생각한 연후에 나름대로 판단을 내린다. 스스로 고민하여 내린 판단에 대해선 지체 없이 소신껏 행동으로 옮기면서 살아왔다. 어쩌면 내 삶은 이러한 과정의 연속인 셈이다. 문제가 크건 작건, 쉬운 것이든 어려운 것이든 이 공식에 대입하여 풀어낸 셈이다. 그리고는 문제를 제대로 풀었는지 잘못 풀었는지 결과를 보면서 어느 과정에서 내가 소홀히 했는지, 적절한 대처를 하였는지 스스로 평가를 해 본다. 짧은 시간 안에 평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이세상 사람이 아닐 때에 평가가 나올 수도 있겠지.
그런데 지금쯤 느낌이 오는 게 하나 있다. 이 위학지서의 맨 첫 과정인 ‘박학지(博學之) 하고’ 하는 말이다. 어떤 문제든 간에 해결의 가장 긴요한 열쇠는 그 문제에 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자료’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요즈음 세상처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때도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의 정보 홍수는 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러나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치고 보면 그 문제 해결에 적합한 정보를 찾는다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오히려 정보가 많아서 탈이다.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만한 ‘자료(data)’를 찾고, 필요한 자료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다음 단계는 자료의 가공이라 하겠다. 이 자료가 분석되고 정리되고 적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보(information)’가 되는 것이다. 다시 이 ‘정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지식(knowledge)’이 되고, 지식이 추상화되어 ‘지혜(wisdom)’가 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물론 ‘박학(博學)’이 정확하고 풍부한 자료를 찾는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자료를 찾기 위해 적접 또는 간접으로 숱한 체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육식(六識)을 낳은 육근(六根)을 통해 스스로의 지적영역을 일단 넓혀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나 경제, 심지어 언론까지도 아전인수격으로 제 발등 불끄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 좀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정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모자라는 것도 아닐텐데. 이럴 때 선인들의 지혜인 ‘위학지서(爲學之序)’를 권해보고 싶다.
김형춘 글. 월간반야 2003년 12월 제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