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나라에 풍년이 들면 백성들의 인심이 순후해지고, 흉년이 들면 백성들의 인심이 흉흉해지기 때문에 임금들은 무척이나 농사에 신경을 썼다. 시대가 변하여 이즈음은 나라의 경제가 농업 등 1차 산업이 아닌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2·3차 산업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그러기에 국가 경영자들은 정치 등 다른 분야 보다 경제정책에 크게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즈음 우리나라는 정치·경제 뿐 아니라 국정전반에 걸쳐 커다란 열병을 앓고 있다. 어느 한 분야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없다. 아니 지금 우리 사회에는 모든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여 믿고 따르는 사람도 없고, 믿고 존중하는 제도나 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의 말을 믿고 따를 것이며 어느 기관의 정책이나 결정을 인정하고 승복하는가.
저마다 이익집단들은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따져 보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행동하니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두산중공업, 철도, 화물연대에 이어 금융, 교육, 자동차, 조선 등도 뒤따라 흔들리고 있다. 모두가 정부를 상대로 집단행동을 하겠다고 한다. 사회나 경제에 대혼란이 예고된다. 노동조합도 단위 사업장이 아닌 산업별로 교섭을 하겠다니 단체행동의 규모도 대형화 될 수밖에 없다. 대외 신인도는 추락하여 재계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해 가고 급기야는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오자 이번에는 국민들이 불안해서 ‘국민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온다.
정작 분위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문 연구기관의 보고서에도 IMF 외환 위기 이후 우리 기업의 성장 잠재력이 급속히 악화되어 기업과 산업 경쟁력이 붕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저성장의 추세가 장기화되면 실업이 늘어나고 소득 증가도 둔화되는 등 우리경제가 감내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산업평화’가 아닌가 한다.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국가 임금위원회’가 기업 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 기업들은 더 빨리, 더 많이 임금 인하 내지 동결 조치를 취하라고 독려하는 등 조속하고도
과감한 시행을 닥달했다는 외신을 본 적이 있다.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함은 물론 쟁점에 대하여 노와 사 사이에서 명확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불안스런 눈으로 나라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산업평화’ 보다 근본적인 것은 ‘마음의 평화’이겠지만.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3년 7월 (제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