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세계의 경제는 유럽의 돼지국가들(PIGS ;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로부터 시작해서 어렵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요즈음 우리 이웃 주택가 골목에 나서면 늘어나는 게 식당이고, 휴대폰 가게에다 언뜻 상호만 보아서는 무슨 업종인지 잘 모를 미용실들이다.
일자리를 잃은 장년층들은 특별한 기술이나 많은 자본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는 게 식당이고, 조금 젊은 층이면 외식산업의 프렌차이즈로 간판을 올린다. 젊고 혈기 넘치는 멀쩡한 청년들은 휴대폰 가게를 열고 온갖 달콤한 언어로 도배를 해놓고 행인들을 유혹한다. 젊은 여성들은 그나마 손쉽게 기술을 익혀서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게 미용실인가 보다.
우리가 IMF 구제 금융을 받고 어려웠던 시절에 가장 호황을 누렸다던 간판산업은 요즈음도 괜찮은 모양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새로 창업을 하면서 망한 업소의 간판을 그대로 달고 개업하는 가게는 없을 테니까.
올해도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졸업생들은 변함없이 의약계열이나 법학계열 등으로 많이 진학했다고 한다. 여전히 우수한 인력은 인문사회계열이나 이공계학과를 기피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제조업 등 생산적인 산업보다는 서비스산업이나 금융산업 등 3차산업으로 편안히 먹고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대학의 이공계졸업생들이 교외에 위치한 기업의 생산현장에 취업하는 것 보다 차라리 도심의 빌딩 속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아직도 많으니 외국의 산업연수생이나 불법체류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증권회사에 취직하여 세칭 잘나가는(?) 사위로부터 외제 승용차를 선물 받은 선배를 주위사람들은 다들 은근히 부러워하는 세태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사가 파산을 하고, 2011년 월가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 여러 도시들로 파급되었던 부유한 1%에 대한 가난한 99%의 ‘점령하라(Occupy)’시위의 근원은 무엇일까. 두 말할 나위 없이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사회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요, 신자유주의의 맹점을 알면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결과다.
오늘의 세계경제가 어려운 게 모두가 신자유주의의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물질주의적 가치아래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한 조그만 이기심이 상대방에 대한 거짓말과 속임수를 통해 무모한 투자관행으로 이어져 다 같이 행복해야 할 공동체를 해체하고 사회적 갈등을 낳고 만 것이다.
시장주의 경제학을 앞세워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에 맡기고 이익이 생기면 개인이 치부하고, 손해가 나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사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제조업은 뒷전이고 금융을 통해서 쉽게 돈 벌고 편안히 사는 게 얼마나 좋은가.
쾌적한 환경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하나로 전 세계의 시장을 손금 들여다보듯 하면서 몇 번의 클릭으로 부를 창출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나은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무한 경쟁의 사회, 자유시장주의가 이론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경쟁에는 형평성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형평성과 보호 장치가 없는 경쟁은 결국 한쪽은 비극으로 다른 한쪽은 모든 걸 갖게 되는 일방적 승자 독식 구조로 귀결되고 만다. 인간사회에서의 경쟁은 판정승과 판정패 정도로 끝나야지, KO로 이기고 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규제를 서두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재래식 구멍가게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형평성과 보호 장치가 없는 경쟁은 ‘큰형[大兄]’의 일방적인 승리 게임이 되고 말 것이다.
얼마 전 발효된 ‘한미FTA’를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 FTA 자체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두고 ‘모든 관세장벽을 철폐하고 시장에 맡겨두자’는 것 아닌가. 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보호 장치 없이 한국과 미국의 산업을 시장의 논리에 맡겨둔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협상이 필요하고 부수법안이 따르는 것이다. 가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경쟁이 있어야만 더 좋은 물건, 더 좋은 삶, 더 나은 세계가 된다고 한다. 당연한 논리다. 경쟁이란 없앨 수도 없고 없어져서도 안 된다.
하지만 경쟁은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종국엔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형평성의 보장이 신자유주의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직은 신자유주의의 위력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지만 지역이나 국가, 계층과 세대, 인종과 종교 사이의 충돌과 대립을 고려하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조정장치와 보호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형춘 창원문성대학 교수, 문학박사, 월간 반야 2012년 4월 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