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여론조사

인간 행동의 기초가 되는 대부분의 지식은 수치나 통계로 계량화되어 나타내기 어려운 애매한 암묵적 지식이 대부분이다. 통계를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사실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고, 그런 지식은 각계 각층 각처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다.

그런데 이즈음엔 개인과 개인의 대화에서부터 나아가 정부가 국민을 설득시키고 자기들이 기대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사안에 걸맞은 통계수치를 제시하지 않으면 아예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현 정권에서는 통계강국을 내걸고 국가 차원에서 통계인프라를 강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런 강화 노력 못지 않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민간통계에 대한 간섭과 통제의 위험성을 제기하며 정부통계는 국가권력자의 귀와 눈이 되어 시장경제를 수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지방선거 철이 되어 가장 호황을 누리는 업종 중의 하나가 여론조사기관이라고 한다. 물론 한철 장사지만. 이 여론조사 또한 통계에 바탕하여 이루어지는데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아전인수격의 합리를 가장한 불합리의 원흉이라 할 수 있다. 어쩌다 공휴일이나 저녁나절에 집에서 조용히 좀 쉴 때에 걸려오는 여론조사의 전화를 받고 달가와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여론조사가 긍정적으로 역할을 하여 올바른 지역 일꾼을 뽑는데 기여한다면 굳이 짜증낼 필요도 없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여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전 모 정당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할 공천대상자를 인물에 대한 평가가 아닌 여론조사로 가리겠다고 했을 때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엊그제 시골에 다녀오다 어느 마을 앞 선거 유세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나와 아무 관계는 없었지만 그냥 그 앞을 차로 지나치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어서 멀찍이 차를 세우고 10여분을 기다리면서 한 후보의 유세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가 당선되면 어떻게 하겠노라고 자기의 주장을 펼치더니 몇장짜리 유인물을 내어들고는 여론조사 결과라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통계수치를 발표하고는 상대 후보가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했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그 서류를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여론조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누가 막대한 돈을 들여 이 여론조사를 의뢰했는가. 여론조사기관에서는 어떤 의도로, 어떤 설문을 작성하고, 어떻게 대상자의 전화번호를 선정하였고, 어떤 방법으로 결과의 통계처리를 하였으며, 누가 이를 확인했는가. 그럴듯하게 여론조사 결과를 내어놓고는 여론조사 기간, 대상, 결과, 오차범위의 한계를 제시하니 그냥 아무런 비판도 없이 이 문건을 믿어야만 하는가.

정작 중요한 것은 통계수치가 아니다. 진정한 시민 유권자의 여론이 중요하고 개개인의 정치에 대한 암묵적 지식이 중요하다. 아직은 우리 국민의 정치와 선거문화에 대한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통계적 지식이 악용되는 선거는 이제 바뀌어져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각종 언론사나 연구소에서 앞다투어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갖고 유권자를 우롱하고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작태는 이제 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보다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이나 합리적 대안이 제시되고, 이를 바탕으로 일을 할 확실한 인물을 내세우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김형춘 (반야거사회 회장, 창원전문대 교수) 글. 월간반야 2006년 6월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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