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우리 모두는 불과 물처럼 서로 상극이었다. 정(正)과 반(反)만 있을 뿐 합(合)이 없었다. 한국사회의 소모적 분열과 갈등은 여전했나 보다. 2005년 한국사회를 풀이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이 꼽혔다. 교수신문이 올 한 해동안 교수신문에 기고했던 필진과 각 일간지 및 지역신문의 칼럼니스트 교수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통털어 풀이할 수 있는 사자성어로 ‘上火下澤’이 38.5%의 지지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주역에 나오는 이 말은 ‘위에는 불, 아래에는 못’이라는 뜻이다.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이나 서로 상생하지 못한 채 비생산적인 논쟁과 대립, 분열만이 있었다는 뜻이다.
지난해 이맘 때 쯤 이었던가. ‘광복 60주년의 기대’를 하면서 ‘패를 지어 상대를 공격한다’는 의미의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사자성어로 꼽힌 것을 탄식하면서 새해에는 제발 이런 성어가 나오지 않기를 그렇게도 바랐는데 또 헛수고로 돌아갔다. ‘오리무중(五里霧中)’,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하다가 끝내는 ‘당동벌이(黨同伐異)’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올해는 갈라지고 말았는가.
나라 운영을 방치하며 벌이는 정쟁, 행정복합도시 건설을 둘러싼 비생산적인 논쟁과 지역갈등, 해방 60년이 되었는데도 끝나지 않은 이념 색깔논쟁 등 상생은 커녕 분열로 치닫기만 했다. 이 가운데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농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는가 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욱 확산되고 있으며, 북녘을 향해 손 흔드는 사람들의 눈에는 나라 안의 도시빈민층은 아예 눈 밖인 것 같다.
세칭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란 사람들의 위선이 어느 해보다 많이 드러났음인지 ‘양두구육(羊頭狗肉 ; 양의 머리를 가게 앞에 달아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과 지도자들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 구사 탓인지 ‘설망어검(舌芒於劍 ; 혀는 칼보다 날카롭다)’이라는 말과, ‘추모멱자(吹毛覓疵 ; 살갗의 털을 뒤져서 흠집을 찾아낸다)’는 말도 나오고, ‘노이무공(勞而無功) ; 힘을 써도 공이 없어 헛수고만 하다)’이라는 성어도 제시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상생은 빛이 바랬고 통합은 물 건너 갔는가. 지난 해 초 닭의 해〔乙酉年〕가 시작될 때는 ‘줄탁동시’라 하여 튼튼한 병아리를 출생시키기 위하여 안과 밖에서 서로 힘을 모아 달걀의 껍질을 쪼아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졌는데 이마져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새해 병술년(丙戌年)에 또 기대를 해야 하는가. 제발 ‘개판’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아야 할 텐데.
다시 한번 더 기대를 걸어보자. 내년 이맘때의 사자성어는 ‘포동존이(抱同存異 ; 같은 뜻을 지닌 이를 포용하되 다른 뜻을 지닌 이도 인정하여 주다)’나 ‘해원상생(解寃相生) ; 원한을 풀고 더불어 살다)’이 꼽혔다는 뉴스가 나오길.
김형춘 (반야거사회 회장) 글. 월간반야 2006년 1월 제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