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丙戌年〕들어 한국사회에서 가장 호황을 누린 업종 중의 하나가 쌍춘년(雙春年)의 덕을 톡톡히 본 결혼예식장을 비롯한 관련산업일 게다. 음력으로 입춘이 두 번 들어있는 해에 결혼을 하면 잘 산다는 속설 때문이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다가오는 새해 정해년(丁亥年)은 ‘황금돼지해’란다. 쌍춘년에 결혼을 하여 새해에 ‘황금돼지띠’를 가진 아이를 낳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 누가 지어낸 것인지도 모르는 이 기분 나쁘지 않은 속설이 올해 하반기의 주말을 온통 결혼식장에 헌납하고, 호주머니의 잡비를 씨말리게 한 장본인이다. 하긴 나도 새해가 되면 황금돼지해의 주인공이 되니까 뭔지 모르지만 괜히 행운이 올 것 같은 예감으로 가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찌푸린 날씨처럼 세모에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올해는 이렇게 지나가더라도 새해에는 좀 나아지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눈을 닦고 찾아봐도 없으니 말이다. 모처럼 실소를 자아낸 일이 있다면, 한나라의 지도자란 사람이 ‘젊은 사람들이 아이 낳을 기회를 주기 위해 병역의무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말을 개그맨 같은 제스처와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여 세인을 웃긴 사건이다.
병술년 한해 내내 답답함과 폭발 직전의 불만을 표현한 것은 바로 ‘올해의 사자성어’였다. 2003년의 ‘우왕좌왕(右往左往)’, 2004년의 ‘당동벌이(黨同伐異)’, 2005년의 ‘상화하택(上火下澤)’에 이어 2006년엔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라는 뜻의 ‘밀운불우(密雲不雨)’가 선정되었다. ‘밀운불우’는 주역 소축괘(小畜卦)의 괘사(卦辭)에 나오는 말로서, 여건은 조성되었으나 일이 성사되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교수신문이 설문조사를 통해 2006년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풀이할 수 있는 사자성어는 ‘밀운불우’외에 ‘교각살우(矯角殺牛)’, ‘만사휴의(萬事休矣)’, ‘당랑거철(螳螂拒轍)’ 등이 나왔으나, ‘밀운불우’가 48.6%의 지지로 선정되었다고 했다. 체증에 걸린 듯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 동북아 정세가 선정의 가장 큰 배경인 셈이다.
우리의 ‘사자성어’와 비교되는 일본의 ‘올해의 한자’는 ‘명(命)’으로 뽑혔다고 한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는 전국에서 9만여 통의 엽서 응모를 집계한 결과 ‘목숨 명〔命〕’이 8천 3백여 통을 얻어 2006년의 상징어로 뽑혔다고 했다. 이는 일본 국왕의 차남이 왕실에서 41년 만에 처음으로 아들을 출산하여 아들로 왕통을 잇게 된데다, 집단 괴롭힘(이지메)으로 인한 자살이나 자녀학대,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등으로 잇따라 ‘하나뿐인 목숨의 중요성을 통감케 한 한해였기 때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한국사회의 ‘답답함과 폭발 직전의 불만’이나 일본사회의 ‘목숨의 중요성’은 다 같이 사회적 병리현상의 표현이지만, 우리의 ‘밀운불우’는 그 원인이 국민 전체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정치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의 지도력 부재에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바라건대 새해에는 금년의 ‘밀운(密雲)’이 국민 모두에게 상서로운 은혜와 사랑을 주는 ‘상우(祥雨)’가 되어 만민에게 희망과 기쁨으로 뿌려졌으면 좋겠다.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 회장․창원전문대교수) 글. 월간반야 2007년 1월 제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