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초저녁달이 떴습니다.
당신과 헤어지던 팔월입니다.
당신과 함께 죽음에 맞서 싸우던 그 뜨겁던 여름 석달처럼
올해도 뜨거운 여름입니다
당신에게서 얻은 겨자씨만한 사랑을
이 세상에 심고 가꾸는 일이 어찌 이리 어렵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는 죽음으로 가는 길까지도 하나 되어가지만
미워하는 사람 어두운 사람들의 밭에
씨앗 하나 가꾸고 풀 한 포기 뽑아내는 일이
이 세상에서는 어쩌면 이리 어렵습니까
크고 하나인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작은 여럿인 것을 사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가는 길은
초저녁달이 구름을 헤치고 가는 것처럼
그렇게 가는 길이 아닙니다.
풀벌레 울음이 깊은 밤의 가운데를 뚫고 가는 것처럼
그렇게 은은히 가지 않습니다.
자식을 찾는 어머니의 애끓는 목청처럼 갑니다.
모래밭에 쓰러진 이에게 마지막 남은 내 몫의 물을 내어주고
내가 타는 목으로 가듯 가는 길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던 그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는 일보다
이 세상을 두루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더 어려운지
알게 하시려는 뜻으로 새기며 조용히 견디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를 여기 가두고 창 밖으로 흐르는 세월을 봅니다.
비가 내리다 그치고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면서
아침이 오고 저녁바람이 부는 것을 봅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곁을 울면서 떠나고
손에 끌려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 그들의 돌아서던 뒷모습까지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말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우리를 미워하던 이들까지도 사랑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여기 이 자리에 끝까지 남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결코 삿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 감옥에 홀로라도 남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기로 함께 손을 잡고 다짐하던
처음 그 마음 한가운데 남아
먼 길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많아서
함께 나눈 사랑보다 함께 해야 할 사랑의 날들이 더 많아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 그저 살아가는 일이 될 때까지
여기 이 자리에 남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