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雪)
홍경자
차고 슬픈 것이 묻어난다
낡고 탈색된 빨랫줄처럼 세어진
어머니의 가르마 너머
유년의 쓸쓸한 언덕배기 위로
표정없는 무명지 나부끼던 만사
마음의 집 어디 빈 가지 걸리고
아버지 화장터에 잠 재우고 돌아오던 날 밤
등 뒤로 빗장 질러 잠근
그 캄캄하고 육중한 시간들
저벅저벅 걸어온다
뿌옇게 휘몰아친 시린 모롱이
그늘진 산자락 한 켠이
며칠 째 잔뜩 뭉개어 지고
차고 슬픈 것이 흐릿하게 접힌다
이개어 바르고 또 바른
망각의 덧칠 긁어내고
일어 선 빗장 속 암울한 기억들 위로
균열의 의미 내린다
빛 바랜 어머니의 가르마 틈 새
얼어 붙은 혹한의 가슴뼈를 벌리고
형체도 없는 슬픔같은 것이
번쩍이며 쌓인다
물컹해진 그 간의 집이 허물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