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모음

날개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旅行이라고는 新婚旅行뿐이었는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청녹색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山의 나무들은 녹색이고
하나님은 청녹색을
좋아하시는가 보다.

청녹색은
사람 눈에 참으로
유익한 빛깔이다.
이 유익한 빛깔을
우리는 아껴야 하리.

이 세상은 유익한 빛깔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구름

하늘에 둥둥 떠있는 구름은
지상을 살피러 온 천사님들의
휴식처가 아닐까.

하나님을 도우는 천사님이시여
즐겁게 쉬고 가시고
잘되어 가더라고 말씀하소서.

눈에 안보이기에
우리가 함부로 할지 모르오니
널리 용서하소서.

막걸리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氣分만 좋은 것이다.

나의 가난함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人間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文學社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文人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幸福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참새

참새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날아와서
내 방문 앞에서 뜰에서
氣分좋게 쫑쫑거리며 놀고 있다.

저것들은
친구인가 부부인가?
하여튼 아주 즐거운 모양이다.
저들같이 나도 좀 안될지 모르겠다.

本能으로만 사는 새들이여 참새여
사람은 理性이니 哲學이니 하여
너희들보다 순결하지 못하고
아름답게 기쁘게 살 줄을 모른다.

무궁화

나의 처가집은
우리집 가까이 있는데
무궁화가
해마다 곱게 핍니다.

무궁화는 우리들 나라꽃입니다
그 나라꽃을
해마다 바로 옆에서 즐길 수 있다니
그저 고맙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그것도 다섯 송이나 사랑할 수 있다니
장모님과 처남에게
따뜻한 情을 더구나 느끼게 됩니다
나라꽃이여 나라꽃이여 永遠하여라.

광화문 근처의 행복

광화문에,
옛 이승만독재와
과감하게 투쟁했던 신문사.
그 신문사의 論說委員인
소설가 오상원은 나의 다정한 친구,

어쩌다 만나고픈 생각에
전화 걸면
기어코 나의 단골인
‘아리랑’다방에 찾아온 그.
모월 모일, 또 그랬더니
와서는 내 차값을 내고
그리고 천원짜리 두개 주는데-
나는 그때

‘오늘만은 나도 이렇게 있다’고,
포켓에서 이천원 끄집어 내어
명백히 보였는데도
‘귀찮아! 귀찮아!’ 하면서
자기 단골 맥주집으로의 길을 가던 사나이!
그 단골집은
얼마 안 떨어진 곳인데
자유당때 休刊당하기도 했던
신문사의 部長 지낸 양반이
경영하는 집으로
셋이서
그리고 내 마누라까지 참석케 해서
自由와 幸福의 봄을-
꽃동산을-
이룬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와 같은 버러지에게
어찌 그런 시간이 있게 했습니까?

茶 집

이른 아침에 茶집에 들렀더니
위선 홍차를 주고 나는 커피를 시킨다.
내 친구들은 어디 있을까.
가야 형편없으므로 기역 기역가지 않을까.
가는 者는 가고 오는 者는 오너라.
孔子님은 외롭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글자를 많이 쓰고 儒敎(?)를 퍼뜨렸다네.
나와 꼭 같은 거야.

어린애들

正午께 집 大門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되서
이 나라 主人이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 있기 빈다.

敎皇 바오로 6世 逝去

한 2百年 前쯤에
茶山 丁若鏞은 初期 가톨릭信徒.
나 또한 二十年 前부터 가톨릭末席
오늘 一九七八年 八月 七日
바오로 敎皇 逝去 소식 듣는다.
한 十五年 前에
敎皇으로 오르신 바오로 六世는
多岐多難한 二十世紀 後半을
하나님 길로 引導하려다가
세월에 못이겨 드디어 天國 가시다.
中東問題와 印度支那 戰爭에
골머리 깊이 썩히신 바오로 六世는
現代世界의 平和와 安定을 위해
主님의 거룩하신 英斷을 希求하다가
드디어 몸소 하늘나무나라로-
理性보다는 精神을 차리라고
먼 곳 불같은 滅亡이 아니고
自己自身이 불 속에 있음을 깨치라고
살아날 길은 오직 天主님의 길이라고
바오로 敎皇님의 下敎하심 永遠하리라.

구름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꽃
뭇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永遠한 모습
통틀어 무게 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上空 수놓네.

歸 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피리

피리를 가졌으면 한다
달은 가지 않고
달빛은 교교히 바람만 더불고-
벌레소리도 죽은 이 밤
내 마음의 슬픈 가락에 울리어 오는
아! 피리는 어느 곳에 있는다
옛날에는
달 보신다고 다락에선 커다란 잔치
피리 부는 樂官이 피리를 불면
고운 宮女들 춤을 추었던
나도 그 피리를 가졌으면 한다
볼 수가 없다면은
만져라도 보고싶은
이 밤
그 피리는 어느 곳에 있는가.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을 그런데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한 가지 所願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들어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편지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靈魂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이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情感에 그득찬 季節
슬픔과 기쁨의 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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