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배경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면 로봇이나 우주선이 서로 싸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화려한 빛과 커다란 소리가 함께 하는 전투 장면은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그런데 이 장면들을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실제와 많이 다르다.
무엇이 다르고 왜 그런지 알아보자.
먼저 우주에서 싸우는 장면에는 다양한 소리가 나온다.
로봇들이 든 칼이 부딪히면서 나는 ‘챙챙’ 소리, 미사일이 날아가며 나는 ‘쉬잉~’ 소리, 우주선이나 로봇이 터지면서 나는 커다란 폭발음 등의 소리 덕분에 우리는 애니메이션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음은 우주의 특수한 환경 때문에 실제로 들을 수 없다.
소리는 파동으로 이뤄져 있다.
바닷물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파도나, 잔잔한 웅덩이에 돌을 던졌을 때 생기는 물이 출렁거린다.
이것이 우리가 볼 수 있는 파동이다.
그런데 이 파동은 공기같은 ‘매질’이 없으면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볼 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의 파동이 TV가 있는 방의 공기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이다.
파동이 귀에 도착해 고막을 떨리게 하면 뇌가 소리를 인식한다.
그럼 우주에서는 어떻게 될까? 지구에는 매질에 해당하는 대기가 있지만 우주에는 대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가 전달되지 못한다.
실제로 우주정거장에서 생활하는 우주인들은 큰 기계 소리 때문에 수면을 방해받지만, 우주복을 입었을 때는 헬멧 안에 있는 장치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우주 공간은 정적의 공간이다.
우리의 눈을 끌어당기는 강한 빛도 우주에서는 발생하기 어렵다.
로봇들이나 우주선의 기본 무기는 대개 ‘레이저’다.
빛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는데, 레이저는 특히 파동의 방향과 빛의 진행방향을 하나로 맞춰 강한 에너지를 갖도록 만든 빛이다.
장난감 레이저 포인터나 사람이 맞으면 사고로 이어질 정도로 강력한 실험용 레이저까지 기본 원리는 비슷하다.
레이저 같은 빛이 번쩍거리며 여러 방향에서 빛나려면 반사되는 물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주 공간은 대부분 비어있다.
별이 내뿜거나 폭발하면서 나오는 ‘성간물질’(수소나 헬륨을 포함한 가스)이 있긴 하지만, 우주에서 레이저빔을 쏘면 한줄기 우아하게 지나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가느다란 빛만 서로 오가면 시각적인 재미가 없다.
쏜살같이 날아간 미사일이 적의 로봇이나 우주선에 맞아 화려하게 터지는 장면도 현실과 맞지 않다.
목표물에 부딪힌 뒤 그대로 폭발하는 미사일은 충돌 때 전해진 충격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순간적으로 내부 압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일반적으로 지구에서 사용하는 미사일은 대기의 압력을 받으면서 내부 압력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진다.
이런 미사일을 대기도 압력도 없는 우주에서 그대로 쓰면 쏘는 순간 내부 압력 때문에 바로 폭발해버린다.
물론 대륙탄도미사일이나 우주선을 발사할 때 쓰는 로켓처럼 미사일을 날아가게 하는 연료과 산소를 함께 실어 대기 바깥에서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다.
또 우주시대가 오면 우주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형태의 미사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미사일 장면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옥의 티’는 해결하기 어렵다.
발사된 미사일이 하얀 연기를 끌고 지나가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이는 미사일이 발사되면서 남는 일종의 ‘찌꺼기’로 빛을 산란해서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비행기가 날아갈 때 하얀 비행기 구름이 남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대기나 먼지가 없고, 태양같은 가까운 광원도 없어 미사일 하나하나가 마치 꼬리같은 하얀 연기를 달고 다니기 어렵다.
과학소설에 나온 인공위성 같은 ‘아이디어’가 몇 십 년 뒤 현실에 등장한 것처럼, 애니메이션 속 우주로봇이나 우주선이 언젠가 현실로 나타날 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 ‘건담’을 실물로 만드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이나 유럽우주국 등 세계의 우주 관련 기관은 태양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우주선을 계속 연구 중이다.
애니메이션에 자연의 법칙과 조금 다른 ‘거짓말’이 들어가는 이유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때의 즐거움을 위해서지만, 미래엔 이러한 ‘거짓말’이 ‘정말’이 되는 날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