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정신병리

돈의 정신병리

돈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고 수단이며 때로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돈의 효용성은 이미 잘 느끼고 있듯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고, 비행기를 타면서 시간도 살 수 있고, 관혼상제에 부조금을 내면서 품위와 체면을 살 수 있으며, 때로는 인력도 살 수 있어 자신의 일을 대신 시킬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벌금이나 보석금으로 구속을 면하게 하기도 한다. 얼핏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하는 그야말로 매력덩어리가 바로 돈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돈을 좋아하고 돈을 벌기위해 애쓰고 노력하면서도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돈이 다가 아니다’라고 애써 주장한다. 그렇다면 돈이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아기들이 태어나서 울기만 하면 어머니가 젖과 우유를 가져다주게 되는데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인줄 알고 마치 자신이 온 세상을 다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자신을 전지전능(omnipotent)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일차적 자기애(primary narcissism)이라고 한다. 그러다 실제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그렇게 해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전능감에 상처를 받게되고 또한 어머니가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한번 실망하고 어머니가 사랑만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 엄하게 대하는 것을 느끼고는 슬픔과 좌절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반복되는 상실의 경험은 자기애에 손상을 주게된다. 결국 돈이란 원하는 것을 가지게 하고,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는 의미에서 잃어버린 어머니의 대용품이고 어머니의 사랑의 대용품이며 자기애의 손상과 아픔을 막아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돈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돈은 쓸 때 그 효용성을 가지므로 소비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매충동을 느끼게 되고 이런 구매충동은 소비를 촉진시키는 경제의 한 원동력으로 볼 수 있겠다. 이런 구매충동은 무계획적인 소비를 하게 하기도 하는데 일반인구의 3분의 1에서 충동구매를 한다는 보고가 있다. 백화점에 따라서는 매출의 상당수(27-62%)가 이런 충동구매 덕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백화점은 현금지급기를 비치하고 백화점 카드를 만들기도 하고 백화점에 오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집에서 앉아서도 충동구매를 하도록 홈쇼핑 방송을 하기도 한다. 소비를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자연스러운 것이기는 해도 소비자로서는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메스미디어의 ‘풍성한 삶의 이미지(image)’에 대한 환상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가지고 싶은 충동에 대처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소비는 정상적인 것이고 어떤 소비는 비정상적인 것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겠다. 학자들은 병적인 소비와 정상적인 소비가 질적으로 다른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인 소비가 양적으로 지나치게 많아지면 병적인 소비가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Valence 등의 학자들은 1988년에 소비병환자(pathological consumers)들의 병적인 소비를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ㆍ첫 번째는 감정반응형 소비자(emotional reactive consumer) 이다.

이들은 그 물건이 지닌 상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구입동기가 감정적이고 보상적인 동기를 가진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형제에 빼앗겼던 인형과 비슷한 모습의 인형을 커서도 지나치게 많이 사는 경우이다.

ㆍ두 번째는 충동형 소비자(impulsive consumer)이다.

이들은 평상시에 사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와 초자아의 절제사이에 갈등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다가 물건을 사려는 욕구가 충동적으로 일어나면 이에 압도되어 물건을 사는 형태이다.

ㆍ세 번째는 광적 소비자(fanatical consumer)이다.

이들은 옷이나 책, 음반 등 단지 한가지 물건에만 집착을 보이며 사들이는 경우이다. 이들은 그 물건을 사는데 열정이 대단해서 마치 강박적인 양상의 구매행동을 보여주어 향락주의자나 수집광과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ㆍ네 번째는 자제상실형 소비자(uncontrolled consumer)이다.

이들은 물건을 사는 것이 소유목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가진 내적 긴장과 불안을 감소시키려는 목적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다. 그 양상이 감정적일 수도 있고, 충동적일 수도 있으며 강박적일 수도 있어 가장 문제가 많은 형태의 소비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물건을 사고 난 다음에 그 물건을 풀어보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구분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구매와 병적인 구매와의 최선의 구분은 결국 행동의 양상에 따르기보다는 행동의 결과에 따르게 된다. 물건을 지나치게 많이 사들이는 행동을 했어도 그것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병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이러한 과도한 구매행동으로 인해 그 자신이 불편을 느끼고 경제적으로 채무를 지게 되고 집안 구성원과의 갈등이 생기고 가정이 파탄이 되는 경우에 병적인 소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병적인 소비에는 단지 과도한 소비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위험이 뒤따르는 무리한 투자, 수전노처럼 돈을 쓰지 않는 양상, 그리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복수를 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과 같은 소비 행태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돈의 노예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적절하게 자신의 분수에 맞추어서 소비를 하고 돈 때문에 가정이나 건강 그리고 자신의 여가나 취미생활을 희생시키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돈이 그 사람의 삶에 멍에가 되기도 한다. 특히 과도한 소비는 가정구성원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그사람의 삶을 피폐화시키게 된다. 이런 과도한 소비에는 그 양상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ㆍ첫 번째는 ‘과소비’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유형이다.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킨 고졸 주부의 경우다. 외아들이어서 한 아이정도는 회사원인 남편의 월급으로 충분히 교육시킬 정도의 경제적인 여유는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주부는 같은 학교에 입학시킨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것을 그저 따라다니며 구경을 했었는데 그렇게 함께 다니다 보니 자신도 물건을 조금씩 사게 되었다. 옷과 장신구들을 사다보니 차차 고급미장원에서 머리도 하게 되고 몸매를 가꾸기 위해 헬쓰클럽에도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물건을 사다보니 월급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고 그래서 주식이 돈벌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 몰래 빚을 얻어 주식투자를 하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친구들이 자기 집의 평수를 물어본다고 하자 하나뿐인 아들 기를 죽일 수 없다며 무리를 하여 아파트도 넓은 평수로 이사했다. 막상 이사를 하게 되어 집들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구도 새로 들어놓아야 하고 카텐도 새로 달아야만 했다. 집을 늘릴 때도 은행에서 융자를 받았기 때문에 카드 빚을 얻어야만 했다. 이렇게 무리하게 반복해서 빚을 얻고 주식투자도 실패를 하게 되자 점점 매달 갚아야할 원금은 늘어만 갔고 결국 남편이 많은 빚을 알게되고 감정적인 갈등이 심해졌다. 상황이 악화되어 생각해보니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행동이 한심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결국은 집을 팔고 빚을 정리하고 나니 이젠 전세를 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다른 어머니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고 결국 아이도 사립초등학교를 포기하고 전학을 시키고 말았다.

이런 경우는 가끔 볼 수 있는 경우다. 돈을 통해 자신도 기죽지 않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려는 무의식적 욕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으로 옮겨져서 자신과 가족에게 엄청나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자신의 고졸 학력에 대한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또한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친교를 맺기 위해 애를 쓰고 어울려 다니면서 자신도 같은 그룹에 속해있음으로서 신분상승을 꾀했던 것이다. 이런 경우 돈은 실추된 자존감을 증가시켜주고 자기애의 손상을 회복시켜주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분수에 맞지 않는 과소비는 결국 자신에게 고통만을 가져오게 하였다.

ㆍ두 번째는 ‘낭비벽’이다.

부유한 부모를 가진 아들에게 낭비벽이 있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는 경향이 있었다. 읽지도 않는 책을 여러 권 사기도 하고 옷을 사더라도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서 다 입지도 않았다. 비교적 돈에 깐깐한 부모는 이런 문제를 수 차례 지적하였지만 아들의 행동은 변화되지 않았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유난히 능력도 떨어지는 이 아들은 부모에게는 골치덩어리였다. 용돈을 주지 않으면 카드를 사용하기도 해서 결국 부모가 이를 대신 갚아주곤 하는 일이 반복되어 병원을 찾게 되었다. 환자는 자신이 어린 시절 다른 형제들에 비해 공부를 잘 하지 못해 부모에게 야단을 맞았던 일들을 고통스럽게 이야기했다.

이런 경우는 돈의 낭비는 부모의 사랑을 얻으려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낭비를 함으로써 비록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부모의 관심을 끌 수가 있고 마치 어린시절 공부를 못해 야단을 맞을 때와 마찬가지로 낭비로 인해 구박을 받으면서도 부모의 관심을 묶어둘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낭비를 함으로써 구박한 부모에게 간접적으로 화를 내고 있는 것일 수 있으며, 특히 여러 개를 물건을 한꺼번에 삼으로써 차별대우한 부모에게 자신은 차별을 하지않는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낭비를 하는 것은 부모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돈을 잃게 한다는 의미에서는 복수일 수 있고 자신이 가진 돈을 잃어버림으로써 어린 시절의 구박과 같은 고통을 받고싶어하는 무의식적 소망일 수가 있겠다.

ㆍ세 번째의 경우는 쇼핑중독 즉 구매광(compulsive buying)이다.

인터넷 상담실(simri.pe.kr)을 통해 문의한 증례인데 인터넷 중독증의 성향이 있는 학생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물건을 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이 학생은 어린 시절 용돈을 받아쓰는 쪼들리는 생활을 했는데 대학 시절 과외를 하면서 수중에 돈이 생기면서 씀씀이가 커졌다고 했다. 문의 당시 공익요원이어서 돈이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가 들면 꼭 사야만 되고 그러다 보니 카드 빚을 얻어야 했고 결재를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물건을 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경우를 구매광 혹은 쇼핑중독증이라고 이야기한다. 증례의 경우 인터넷에도 중독된 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매광의 증상을 알코올 중독과 마찬가지로 중독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정신의학적으로 쇼핑에 중독된 상태라는 것은 우선 심리적으로 의존(psychological dependence)이 되어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가 반복적으로 생기고 신체적으로도 의존(physical dependence)되어 있어 쇼핑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불안, 초조 등의 신체적인 금단증상(withdrawal symptom)이 생기고 똑 같은 만족을 위해서 쇼핑을 하는 정도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내성(tolerance)을 보이는 경우이다. 또한 1994년에 Lejoyeux는 구매광을 진단하기 위해 두가지 요인을 이야기 했다. 첫 번째 요인에는 6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쇼핑이 불가능한 상태에서의 심리적인 동요와 초조 2)물건을 사기전의 긴장의 고조 3)물건을 사고난다음의 긴장의 해소 4)물건을 사기위해 다른 약속을 어기는 경우 5)물건의 구매가 법적, 가정적, 재정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 6)상점을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노력을 하는 경우 등이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가족들이 이러한 충동적이고 과도한 구매에 대해 잘 참아내는 능력을 들었다. 구매광을 이렇게 중독의 관점에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충동조절의 장애로 보는 견해도 있고 마음속의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강박증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이제까지 언급했듯이 소비의 양상은 정상적인 것에서부터 병적인 경우까지 다양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과소비의 양상이 다양한 만큼 아마도 여러 가지 원인론적인 접근을 할 수 있고 원인론에 따른 대책도 필요하겠다.

우선 자신을 파괴하려는 죽음의 본능같은 개인의 심리적 갈등이나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병적인 부분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에는 각각의 개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해법들이 있을 수 있겠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의 무의식적 갈등이 원인이 되고 물건을 사는 과소비가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면 개인정신치료가 필요하고 우울증이나 강박증의 변형된 표현으로 과소비가 나타난다면 항 우울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중독의 양상을 띄고 있다면 인지행동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사회환경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물질적인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분위기도 과소비를 부추기는데 한 몫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정에서도 어린 시절 가난을 경험했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물질적으로는 어려움을 주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자녀들에게 절제를 가르치지 못하여 부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녀들에게 낭비심리나 과소비를 부추기게 되었다. 또한 방송이나 신문같은 메스미디어들은 수많은 광고를 통해 ‘소비가 미덕’이라는 암시를 반복함으로써 소비에 관한 한 집단적인 최면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의 과소비는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또 당장의 욕구충족보다는 먼 미래의 보다 큰 만족을 위하여 즉각적인 욕구충족을 연기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건전한 가치관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마련될 필요성이 있겠다.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돈과 소비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각자의 가치관을 나름대로 가질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가치관은 불필요하게 돈을 숭배하여 돈 앞에서 기가 죽는 심리적인 갈등을 줄여 줄 것이며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하면서도 자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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