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독립의 서 (한용운)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터럭처럼 여기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달게 받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을 한계로 삼는 것으로서 약탈적 자유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적 자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평화의 정신은 평등에 있으므로 평등은 자유의 상대가 된다. 따라서, 위압적인 평화는 굴욕이 될 뿐이니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한다. 실로 자유와 평화는 전 인류의 요구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지식은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류가 몽매한 데서부터 문명으로, 쟁탈에서부터 평화로 발전하고 있음을 사실로써 증명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범위는 개인적인 데로부터 가족, 가족적인 데로부터 부락, 부락적인 것으로부터 국가, 국가적인 것에서 세계, 다시 세계적인 것에서 우주주의로 진보하는 것인데 여기서 부락주의 이전은 몽매한 시대의 티끌에 불과하니 고개를 돌려 감회를 느끼는 외에 별로 논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8세기 이후의 국가주의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제국주의가 대두되고 그 수단인 군국주의를 낳음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우승 열패·약육 강식의 이론이 만고불변의 진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국가 간에, 또는 민족 간에 죽이고 약탈하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수십만의 생명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이 세상에서 안 일어나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서양의 독일이요, 동양의 일본이다.
이른바 강대국, 즉 침략국은 군함과 총포만 많으면 스스로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도의를 무시하고 정의를 짓밟는 쟁탈을 행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할 때는 세계 또는 어떤 지역의 평화를 위한다거나 쟁탈의 목적물 즉 침략을 받는 자의 행복을 위한다거나 하는 기만적인 헛소리로써 정의의 천사국으로 자처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폭력으로 조선을 합병하고 2천만 민중을 노예로 취급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선을 병합함이 동양 평화를 위함이요, 조선 민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약자는 본래부터 약자가 아니요, 강자 또한 언제까지나 강자일 수 없는 것이다. 갑자기 천하의 운수가 바뀔 때에는 침략 전쟁의 뒤꿈치를 물고 복수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니 침략은 반드시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평화를 위한 전쟁이 있겠으며, 또 어찌 자기 나라의 수천 년 역사가 외국의 침략에 의해 끊기고, 몇 백, 몇 천만의 민족이 외국인의 학대 하에 노예가 되고 소와 말이 되면서 이를 행복으로 여길 자가 있겠는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명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가 없는 민족은 없는 법이다. 이렇게 피를 가진 민족으로서 어찌 영구히 남의 노에가 됨을 달게 받겠으며 나아가 독립자존을 도모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국주의, 즉 침략주의는 인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가장 흉악한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이 같은 군국주의가 무궁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론보다 사실이 그렇다. 칼이 어찌 만능이며 힘을 어떻게 승리라 하겠는가. 정의가 있고 도의가 있지 않는가.
침략만을 일삼는 극악무도한 군국주의는 독일로써 그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귀신이 곡하고 하늘이 슬퍼한 구라파 전쟁은 대략 1천만의 사상자를 내고, 몇 억의 돈을 허비한 뒤 정의와 인도를 표방하는 기치 아래 강화 조약을 성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국주의의 종말은 실로 그 빛깔이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전 세계를 유린하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노심초사 20년간에 수백만의 청년을 수백 마일의 싸움터에 배치하고 장갑차와 비행기와 군함을 몰아 좌충우돌, 동쪽을 찌르고 서쪽을 쳐 싸움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파리를 함락한다고 스스로 외치던 카이제르의 호언은 한 때 장엄함을 보였었다. 그러나 이것은 군국주의의 결별을 뜻하는 종곡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과 호언장담뿐이 아니라 독일의 작전계획도 실로 탁월하였다. 휴전회담을 하던 날까지 연합국 측의 군대는 독일 국경을 한 발자국도 넘지 못하였으니 비행기는 하늘에서, 잠수함은 바다에서, 대포는 육지에서 각각 그 위력을 발휘하여 싸움터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군국주의적 낙조의 반사에 불과하였다.
아아, 1억만 인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세계를 손아귀에 넣을 것을 다짐하면서 세계에 선전포고했던 독일 황제. 그리하여 한때는 종횡무진으로 백전백승의 느낌마저 들게 했던 독일 황제가 하루아침에 생명이나 하늘처럼 여기던 칼을 버리고 처량하게도 멀리 화란 한 구석에서 겨우 목숨만을 지탱하게 되었으니 이 무슨 돌변이냐. 이는 곧 카이제르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군국주의의 실패로서 통쾌함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그 개인을 위해서는 한가닥 동정을 아끼지 않는 바이다.
그런데 연합국측도 독일의 군국주의를 타파한다고 큰소리 쳤으나 그 수단과 방법은 역시 군국주의의 유물인 군함과 총포 등의 살인도구였으니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친다는 점에서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일의 실패가 연합국의 전승을 말함이 아닌즉 많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합력하여 5년간의 지구전으로도 독일을 제압하지 못한 것은 이 또한 연합국 측 준군국주의의 실패가 아닌가.
그러면 연합국 측의 대포가 강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의 칼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하여 전쟁이 끝나게 되었는가. 정의와 인도의 승리요, 군국주의의 실패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와 인도, 즉 평화의 신이 독일 국민과 손을 잡고 세계의 군국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그것이 곧 전쟁 중에 일어난 독일의 혁명이다.
독일혁명은 사회당의 손으로 이룩된 것인 만큼 그 유래가 오래고 또한 러시아 혁명의 자극을 받은 바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괄적으로 말하면, 전쟁의 쓰라림을 느끼고 군국주의의 잘못을 통감한 사람들이 전쟁을 스스로 파기하고 군국주의 칼을 분질러 그 자살을 도모함으로써 공화혁명의 성공을 얻고 평화적인 새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연합국은 이 틈을 타 어부지리를 얻는 데 불과하다.
이번 전쟁의 결과는 연합국뿐만 아니라 또한 독일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이번 전쟁에 독일이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면 그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설사 독일이 한 때 승리를 거두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연합국의 복수전쟁이 일어나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 군대를 해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이 패전한 것이 아니고 승리했다고도 할 수 있는 때에 단연 굴욕적인 휴전조약을 승낙하고 강화에 응한 것은 기회를 보아 승리를 먼저 차지한 것으로서, 이번 강화회담에서도 어느 정도의 굴욕적 조약에는 무조건 승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3월 1일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음). 따라서, 지금 보아서는 독일의 실패라 할 것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독일의 승리라 할 것이다.
아아, 유사 이래 처음 있는 구라파 전쟁과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독일의 혁명은 19세기 이전의 군국주의, 침략주의의 전별회가 되는 동시에 20세기 이후의 정의·인도적 평화주의의 개막이 되는 것이다. 카이제르의 실패가 군국주의 국가의 머리에 철퇴를 가하고 윌슨의 강화 회담 기초 조건이 각 나라의 메마른 땅에 봄바람을 전해 주었다. 이리하여 침략자의 압박 하에서 신음하던 민족은 하늘을 날 기상과 강물을 쪼갤 형세로 독립·자결을 위해 분투하게 되었으니 폴란드의 독립선언, 체코의 독립, 아일랜드의 독립선언, 조선의 독립선언이 그것이다 (3월 1일까지의 상태).
각 민족의 독립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 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조선혁명선언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 생존의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경제의 생명인 산림ㆍ천택川澤ㆍ철도ㆍ광산ㆍ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버이며 토끼로 끊고, 토지세ㆍ가옥세ㆍ인구세ㆍ가축세ㆍ백일세白一稅ㆍ지방세ㆍ주초세酒草稅ㆍ비료세ㆍ종자세ㆍ영업세ㆍ청결세ㆍ소득세…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야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여간如干 상업자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집중의 원칙 하에서 멸망할 뿐이다. 대다수 인민, 곧 일반 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종년終年 소득으로 일신一身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진공進供하야 그 살을 찌워주는 영원한 우마牛馬가 될 뿐이요, 끝내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이 연년年年 고도의 속률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배 고픈 귀신이 아니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귀신이 될 뿐이다.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ㆍ경찰정치를 힘써 행하여 우리 민족이 한 발자국의 행동도 임의로 못하고, 언론ㆍ출판ㆍ결사ㆍ집회의 자유가 없어 고통의 울분과 원한이 있어도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요,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 뜬 소경이 되고, 자녀나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 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속여 소전오존의 형제”라 하며, “삼한 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라 한 일본놈들 적은 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정치를 찬미하는 반일본화半日本化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 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를 틀고 목에 칼을 씌우고 발에 쇠사슬 채우기ㆍ단금질ㆍ채찍질ㆍ전기질ㆍ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 매는, 콧구멍에다 물 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 제국의 형률사건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 옥문에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가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하며, 진취 활발의 기상은 경우境遇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ㆍ채찍질ㆍ구박ㆍ압제를 받아 환해 삼천리가 일개 대감옥이 되야, 우리 민족은 아주 인류의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로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 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초개草芥로 보아, 을사 이후 13도의 의병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군대가 행한 폭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즉, 최근 3ㆍ1운동 이후 수원, 선천 등의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ㆍ서간도ㆍ노령ㆍ연해주 각처까지 도차에 거민을 도륙한다, 촌락을 소화燒火한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오욕汚辱한다, 목을 끊는다, 산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일신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가, 아동을 악형한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야 인간의 ‘산 송장’을 만들려 하는도다.
이상의 사실에 거據하야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통치가 우리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
내정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 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평화’ ‘한국독립 보존’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야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ㆍ재산ㆍ자유 보호” “조선인민 행복 증진” 등을 신명申明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야 2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 보느냐? 3ㆍ1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ㆍ민원식 등 한두 매국노를 시키어 이따위 광론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附和하는 자가 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적奸賊이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관대한 도량이 있어 개연히 이러한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민족은 일반의 아귀餓鬼가 될 뿐이 아니냐? 참정권을 획득한다 하자. 자국 무산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 개 노예 대의사代議士의 선출로 어찌 아사의 화를 면하겠느냐? 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어떤 종류의 자치임을 물문勿問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제국’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그 지배 하에 있는 조선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허명虛名으로써 민족적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일본이 돌연히 불보살佛菩薩이 되야, 일조一朝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환부하며 내정ㆍ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환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허명虛名의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봉대한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
일본 강도정치 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 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이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이니, 경제약탈의 제도 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존’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 발전의 가능이 있으랴? 쇄망한 인도족ㆍ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하나는 금전의 힘으로 그 조상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하나는 그 토지의 광廣과 인구의 중衆으로 상고上古에 자유발달한 문명의 남은 혜택을 보수保守함이니, 어디 문맹蚊蝱 같이 시랑豺狼 같이 인혈人血을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 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보수保守한 전례가 있더냐? 검열ㆍ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ㆍ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자명自鳴하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는 이것을 문화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의거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내정독립, 자치ㆍ참정권론자)나 강도정치 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문화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
강도 일본의 구축驅逐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다음과 같은 논자들이 있다. 제1은 외교론이나, 이조 5백 년 문약정치文弱政治가 외교로써 호국의 장책長策을 삼아왔다. 더욱이 그 말세에 이르러 대단히 심한 나머지, 갑신甲申 이래 유신당維新黨ㆍ수구당守舊黨의 성쇠가 거의 외원外援의 유무에서 판결되었다.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갑국을 끌어당겨 을국을 제압함에 불과하였고, 그 의뢰依賴의 습성이 일반 정치사회에 전염되었다. 갑오ㆍ갑신 양 전역에 일본이 수십만의 생명과 수억만의 재산을 희생함으로써 청ㆍ노 양국을 물리고, 조선에 대한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 하는 이들은 일검일탄으로 혼용탐폭昏庸貪暴 한 관리나 국적에게 던지지 못하고, 탄원서나 열국공관列國公館에 던졌다. 청원서나 일본 정부에 보내 국세國勢의 고약孤弱함을 애소哀訴하여 국가존망ㆍ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 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 천 년 만에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의 표시가 겨우 하얼빈의 총, 종로의 칼, 산림유생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자勇者로 보면 침을 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인자仁者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러고도 국망 이후 해외로 나가는 모모 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일미전쟁日美戰爭ㆍ일로전쟁 등 기회’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고, 최근 3ㆍ1운동에 일반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 민족의 분용전진奮勇前進의 의기를 때려 부수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제2는 준비론이니, 을사조약 당시에 열국공관에 빗발 돋듯 하던 종이쪽지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해아海牙밀사도 독립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 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불계不計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아관대의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사냥포수의 총 든 무리를 몰아가지고 조일전쟁朝日戰爭의 전투선에 나섰지만, 신문 쪽이나 본 이들 – 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리 할 용기가 아니 난다.
이에, “금일 금시로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사졸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 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감각되어,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 이외까지 확장돼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다. 경술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ㆍ북간도의 산림을 더듬으며, 혹 서비리아西比利亞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ㆍ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몰하야 십여 성상星霜 내외 각지에서 목이 터질 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라야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 없는 단체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력誠力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ㆍ경제 양 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돼 의식衣食의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지 일의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실로 일장一場의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4.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驅逐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이상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 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해 다만 갑ㆍ을 양 세력, 신ㆍ구 양 상전의 숙인孰仁, 숙폭孰暴, 숙선孰善, 숙악孰惡을 보아 그 향배를 정할 뿐이요, 직접의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야 ‘포악한 임금을 죽이고 백성을 위로한다’이 혁명의 유일한 취지가 되고 ‘한 도시락의 밥과 한 종지의 장으로써 임금의 군대를 맞아들인다’가 혁명사의 유일미담이 되었거니와, 금일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ㆍ팽창의 열도가 숫자상 강약 비율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해진 판단에 이탈하야
무전무병無錢無兵한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富力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구外寇도 구축驅逐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제일보는 민중각오의 요구니라.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라는 열렬한 부르짖음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ㆍ부자연ㆍ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 하는 유일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선각先覺한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됨이 민중각오의 제1로路이다.
일반 민중이 기飢, 한寒, 곤困, 고苦, 처호妻呼, 아제兒啼, 세납의 독촉, 사채의 재촉, 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이다. 만일, 그 압박의 주인 되는 강도정치의 시설자인 강도들을 격폐擊斃하며,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四海에 전하며 만중萬衆이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인인人人마다 ‘아사餓死’이 외에 오히려 혁명이란 일로가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자勇者는 그 의분에 못이기어, 약자는 그 고통에 못 견디어 모두 이 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보편적으로 전염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활잔포奸猾殘暴한 강도 일본이 필경 구축驅逐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 10만이 일척一擲의 작탄炸彈만 못하며 억천 장의 신문ㆍ잡지가 일회 폭동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그만이어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낭떨어지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라. 우리의 경험으로 말하면, 갑신정변은 특수세력이 특수세력과 싸우던 궁중宮中 일시의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국애국의 대의로 격기激起한 독서계급의 사상이며, 안중근ㆍ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하였지만 그 후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ㆍ1운동의 만세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언뜻 보였지만 또한 폭력적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ㆍ폭력’ 양자 가운데 그 하나만 빠지면 비록 굉렬장쾌轟烈壯快한 거동이라도 또한 전뢰電雷같이 수그러지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이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라”, “일본을 구축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참절장절慘絶壯絶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흑암黑暗한 함정이요,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멸한 활로活路이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참절장절慘絶壯絶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암살ㆍ파괴ㆍ폭동-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
가) 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나) 일본 천황 및 각 관공리
다) 정탐노ㆍ매국적賊
라) 적의 일체 시설물
이 외에 각 지방의 신사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적 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나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써 마주할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 강도 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이들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 세력을 파괴하려는 것이, 제1은 이족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족異族 그것이 전제專制하여 있으니, 이족 전제의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므로, 고유적 조선을 발견하기 위하여 이족통치를 파괴함이니라.
제2는 특권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나 무엇이나 하는 강도단의 특권계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민중은 자유적 조선민중이 아니니, 자유적 조선민중을 발견하기 위하여 특권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제3은 경제약탈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라. 왜? 약탈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기가 생활하기 위해 조직한 경제가 아니요,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단의 살을 찌우기 위해 조직한 경제이니, 민중생활을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약탈 제도를 파괴함이니라.
제4는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 위에 강자가 있고 천자賤者 위에 귀자貴者가 있어 모든 불평균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탈, 서로 질투ㆍ원수시하는 사회가 된다. 처음에는 소수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해치다가 말경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해치어 민중 전체의 행복이 필경 숫자상의 공空이 되고 말 뿐이니, 민중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함이니라.
제5는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유래하던 문화사상의 종교ㆍ윤리ㆍ문화ㆍ미술ㆍ풍속ㆍ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야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供給하던 제구諸具가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게 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 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전혀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다.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사상이 박약하며 자유 향상의 흥미가 결핍돼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다. 그러므로 민중문화를 제창하기 위해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이족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기旗’가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하고자 하는 치사癡想만 있다 하면 5백 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 것이다.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新朝鮮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민중이 한 편이 되고 일본강도가 한 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하여 폭력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부절不絶하는 폭력-암살ㆍ파괴ㆍ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지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1923년 1월
의열단義烈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