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 울 나 기

겨 울 나 기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 주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잃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가죽나무

가죽나무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것을 안다.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 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를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