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손 시린 나목(裸木)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이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워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여름 편지

여름 편지

1

움직이지 않아도

태양이 우리를 못 견디게 만드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서로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기쁨으로 타오르는

작은 햇덩이가 되자고 했지?

산에 오르지 않아도

신록의 숲이 마음에 들어차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묵묵히 기도하며

이웃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고 했지?

바닷가에 나가지 않아도

파도소리가 마음을 흔드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탁 트인 희망과 용서로

매일을 출렁이는

작은 바다가 되자고 했지?

여름을 좋아해서

여름을 닮아가는 초록빛 친구야

멀리 떠나지 않고서도

삶을 즐기는 법을 너는 알고 있구나

너의 싱싱한 기쁨으로

나를 더욱 살고 싶게 만드는

그윽한 눈빛의 고마운 친구야

2

잔디밭에 떨어진

백합 한 송이

가슴이 작은 새가

살짝 흘리고 간

하얀 깃털 한 개

이들을 내려다보는

느티나무의 미소

그리고

내 마음의 하늘에 떠다니는

그리움의 흰구름 한 조각에

삶이 뜨겁네

3

바람 한점 머물지 않고

몸도 마음도

땡볓에 타는 여름

땀에 절어

소금기는 다빠져버린

나의 무기력한 일상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매미. 쓰르라미는

참 오래도 우는구나

너무 힘들어 쉬고 있는

나의 의무적인 기도를

즐겁게 즐겁게

대신 노래해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