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장날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립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가와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사슴

사슴 –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