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7월 26일 오늘의 독립운동가

저는 이번 일로 확실히 알았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맨손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겁내어 총과 칼로 법석을 떨었습니다.
여러분, 조신의 해방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다 함께 일어나십시오.
하느님도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 유관순

출생

1897.7.26
~ 1965.5.20
독립운동가 오해봉(吳海鳳) – 고향(경북 영덕)
1874.7.26
~ 1954.2.15
독립운동가 김호직(金浩直) – 고향(경북 의성)
1895.7.26
~ 1941.1.23
독립운동가 전재완(全在完) – 고향(경남 마산)
1887.7.26
~ 1942.6.17
독립운동가 오성문(吳聖文) – 고향(충북 진천)
1897.7.26
~ 1928.6.28
독립운동가 김강아지(金江牙之) – 고향(경북 의성)
1889.7.26
~ 1957.9.25
독립운동가 김창수(金昌水) – 고향(경북 영일)
1892.7.26
~ 1971.10.25
독립운동가 남영렬(南英烈) – 고향(충남 서산)
1856.7.26
~ 1910.8.15
독립운동가 송주면(宋宙勉) – 고향(전남 화순)
1881.7.26
~ 1934.1.2
독립운동가 곽인석(郭仁錫) – 고향(전남 순천)
1892.7.26
~ 1931.5.2
독립운동가 남상락(南相洛) – 고향(충남 서산)
1909.7.26
~ 미상
독립운동가 한상택(韓相澤) – 고향(경북 영천)
1888.7.26
~ 1952.8.30
독립운동가 김종삼(金鍾三) – 고향(충남 홍성)
1881.7.26
~ 1931.2.19
독립운동가 손정도(孫貞道) – 고향(평남 강서)
1900.7.26
~ 1959.8.22
독립운동가 정명준(鄭命俊) – 고향(경북 칠곡)
1915.7.26
~ 1965.1.27
독립운동가 구철회(具喆會) – 고향(경기 수원)

사망

미상
~ 1909.7.26
독립운동가 오응천(吳應天) – 고향()
1895.12.15
~ 1978.7.26
독립운동가 임기송(林基松) – 고향(황해 평산)
(1877)
~ 1927.7.26
독립운동가 박태선(朴泰善) – 고향(충남 청양)
1884.10.27
~ 1950.7.26
독립운동가 강연상(姜鍊翔) – 고향(함남 홍원)
1883.5.13
~ 1938.7.26
독립운동가 김기용(金基用) – 고향(경북 영천)
1900.2.17
~ 1922.7.26
독립운동가 조복래(趙福來) – 고향(충남 청양)
1896.1.25
~ 1945.7.26
독립운동가 강봉돌(姜奉乭) – 고향(경기 안성)
1896.6.27
~ 1961.7.26
독립운동가 최봉직(崔奉稷) – 고향(황해 벽성)
1887.7.22
~ 1950.7.26
독립운동가 김재홍(金在泓) – 고향(경남 진주)
1887.1.10
~ 1909.7.26
독립운동가 박준기(朴準基) – 고향(전남 장성)
1882.12.7
~ 1958.7.26
독립운동가 정사인(鄭士仁) – 고향(경기 개성)
1880.1.14
~ 1942.7.26
독립운동가 조중구(趙重九) – 고향(충남 부여)
1890.2.17
~ 1943.7.26
독립운동가 배세태(裵世泰) – 고향(경북 의성)
1866.11.29
~ 1940.7.26
독립운동가 하재연(河在衍) – 고향(경남 함양)
1865.1.24
~ 1945.7.26
독립운동가 남광원(南光元) – 고향(경기 부천)
1897.3.23
~ 1936.7.26
독립운동가 이학필(李學弼) – 고향(평북 영변)
1889.4.12
~ 1956.7.26
독립운동가 이승연(李承淵) – 고향(경북 안동)
1894.1.15
~ 1983.7.26
독립운동가 이판성(李判星) – 고향(미상)
1911.3.2
~ 1967.7.26
독립운동가 강문일(康文一) – 고향(제주)
1886.10.05
~ 1948.07.26
독립운동가 조남희(趙南熙) – 고향(충남 청양)

2016년 07월 26일 오늘의 명언

장태완

쿠데타를 하고 나서 집권을 위해 어느 한쪽을 손을 봐야 했지. 그래서 민주화를 외쳐대는 전라도 광주를 친 거야. 서빙고에서 알았지만 놈들은 정부운용 계획까지 치밀하게 짜놓았더군.

쿠데타는 5·16이나 12·12에서 보듯 불과 200∼300명의 군인이 저질러. 이런 것이 미화되면 누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으며,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거야.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 날 좀 내버려둬.

수경사는 대통령령으로 방패계획에 의해 창설됐지. 또 수경사의 사전 허락없이 수도권에 군병력이 절대 들어올 수 없어. 지휘관이 몰래 수경사 예하 30경비단을 장악한 그 자체가 중대 반란이야.

사실,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도 조사에 불응했습니다. 정 총장께서 총장직을 내놓고 6개월정도만 집에서 쉬고 계시면 국방부장관이나 더한 자리를 보장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경사 소속 전차를 출동시키려고 부대 정문을 나서는데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와 ‘출동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더군.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당했어. 또 휘하의 지휘관들은 이미 저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어. 정말 기막힐 노릇이지.

나야, 이래저래 죽을 몸인데 건강이 뭐가 중요하겠소. 그런데 전 장군, 난 수경사령관이오. 나의 임무(반란군 진압)가 뭔지 잘 알잖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