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 국

들 국

김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무슨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당신을 기다리는 이 하루

당신을 기다리는 이 하루

하루종일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이 하루

내 눈과 내 귀는

오직 당신이 오실 그 길로 열어졌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이 오실 그 길에

새로 핀 단풍잎 하나만 살랑여도

내 가슴 뛰고

단풍나무 잎새로 당신 모습이

찾아졌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그 긴 기다림의 고요는

운동장을 지나는

물새 발작 소리까지 다 들렸습니다

기다려도 그대 오지 않는

이 하루의 고요가 점점

적막으로 변하여

해 저문 내 길이 지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