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엔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내가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 마음의 눈 녹지 않는 그늘 한쪽을

나도 함께 아파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그대여 우리가 아직도 아픔 속에만 있을 수는 없다.

슬픔만을 말하지 말자.

돌아서면 혼자 우는 그대 눈물을 우리도 알지만

머나먼 길 홀로 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눈물로 가는 길 피 흘리며 가야 하는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밤도 가고 있는지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벗이여 어서 고개를 들자

머리를 흔들고 우리 서로 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 가자

그대여 아직도 절망이라고만 말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