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꽃들은 향기 하나로 먼 곳까지 사랑을 전하고

새들은 아름다움 소리 지어 하늘 건너 사랑을 알리는데

제 사랑은 줄이 끊긴 악기처럼 소리가 없습니다.

나무는 근처의 새들을 제 몸 속에 살게 하고

숲은 그 그늘에 어둠이 무서운 짐승들을 살게 하는데

제 마음은 폐가처럼 아무도 와서 살지 않았습니다.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하늘 한복판으로 달아오르며 가는 태양처럼

한번 사랑하고 난 뒤 서쪽 산으로 조용히 걸어가는 노을처럼

사랑할 줄을 몰랐습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면서 얼지 않아

골짝의 언 것들을 녹이며 흐르는 물살처럼

사랑도 그렇게 작은 물소리로 쉬지 않고 흐르며 사는 일인데

제 사랑은 오랜 날 녹지 않은 채 어둔 숲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마음이 닮아 얼굴이 따라 닮아 오래 묵은 벗처럼

그렇게 살며 늙어가는 일인데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비 내리는 밤

비 내리는 밤

빗방울은 장에 와 흐득이고 마음은 찬 허공에 흐득인다

바위 벼랑에 숨어서 젖은 몸으로 홀로 앓는 물새마냥 이레가 멀다하고

잔병으로 눕는 날이 잦아진다.

별마다 모조리 씻겨 내려가고 없는 밤 천리 만길 먼 길에 있다가

한 뼘 가까이 내려오기도 하는 저승을 빗발이 가득 메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