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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게
몸이 아프고 마음이 우울한날
너는 나의
어여쁜 위안이다. 바람이여
창문을 열면
언제라고 들어와
무더기로 쏟아내는
네 초록빛 웃음에 취해
나도 바람이 될까
근심 속에 저무는
무거운 하루일지라도
자꾸 가라앉지 않도록
나를 일으켜다오
나무들이 많이 사는
숲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다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겠다
삶의 절반은 뉘우침 뿐이라고
눈물 흘리는 나의 등을 토닥이며
묵묵히 하늘을 보여준 그 한사람을
꼭 만나야겠다.
몽당연필
너무 작아
손에 쥘 수도 없는 연필 한개가
누군가 쓰다 남은 이 초라한 토막이
왜 이리 정다울까
욕심이 없으면 바보되는 이세상에
몽땅 주기만 하고 아프게 잘려왔구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깨끗한 소멸을
그 순박한 순명을 본받고 싶다.
해픈 말을 버리고 진실만 표현하며
너처럼 묵묵히 살고 싶다.
묵묵히 아프고 싶다.
민들레의 영토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로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