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의 이 푸르른 하늘 밑에 또다시 가을이 오면

식민지의 이 푸르른 하늘 밑에 또다시 가을이 오면

나뭇잎 몇개가 떠서 지켜보는 그 날의 하늘도

오늘처럼 이렇게 푸르렀을 겁니다

푸르른 가슴으로 그들도 젊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과일처럼 자라오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그들도 보장된 미래와 영예롭게 빛나는

자신의 이름 하나를 가꾸기 위해

제복 속에서 꿈꾸고 행복하였을 겁니다.

적어도 식민지에 대하여 눈뜨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내 이웃의 삶과 빼앗긴 땅에 대하여 생각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나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사랑하면서부터

이 땅에는 피 흘리며 지켜야 할 것이 있음을 알면서부터

그들은 사랑보다는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남보다 먼저 깨어 피 흘리며 살았습니다.

자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문을 닫은 채 창 안에서 흘리는

소리없는 비웃음도 받았습니다

물살이 거세면 물살만을 탓하고

불길이 세차면 불길만을 두려워하며

사랑에 대하여 평등에 대하여 정의에 대하여

한 발짝도 걸어 나갈 줄 모르는 사람들이

등 돌리고 서서 질타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 모두를 짓밟아온 이민족의 총대 밑에서

아직도 다만 기다려야 한다고만 하는

사람들과도 섞여 살았습니다.

용기에 대하여 민족에 대하여

지나치다고만 탓하는 근엄한 꾸지람을 들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 땅을 지켜온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아니다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해온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이민족의 총칼 앞 그 가장 가파른 선봉에 서서

쓰러지던 이들은 누구였습니까

이민족과 야합하여 동족의 등을 밟고 선 사람들의 주먹을 향하여

가장 먼저 팔 걷고 나서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렇게 살아 오랏줄에 꽁꽁 묶여 차디찬 감옥으로

가장 많이 끌리어가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분단된 이 나라 눈물의 이 나라

철조망을 걷어내는 일까지 두려워하지 않으며

함께 걸음을 딛던 이들은 누구였습니까

태극기의 그 절반의 붉은 피를 목에 걸고

목메어 목메어 통일의 그 날을 향해 가는 이는

지금 또 누구입니까

식민지의 이 푸르른 하늘 밑에 또다시 가을이 오면

그들도 이 땅의 많은 이들과 똑같이 사랑하고 아파하고

사랑하는 이의 어깨에 기대어

투정할 줄 아는 젊은 가슴들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장례행렬이 끊이지 않는 죽음의 이 시대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버리고 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 땅은 진정 누가 피 흘리며 지켜오는 나라입니까

이토록 푸르른 가을하늘 밑에

끊임없이 붉은 피 흐르는 이 나라는.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