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08일 오늘의 명언

존 레논

The Legion of Honor의 십자가가 나에게 수여되었다. 그러나 그 작위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몇 없다.

흑인과 백인, 황인종 모두에게 똑같은 크리스마스이다. 그러니 모든 싸움을 멈추어보자.

현실은 상상력에 많은 것을 맡긴다.

항상 그랬듯이 모든 얼간이 뒤에는 굉장한 여자가 있다.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 지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이다.

최악의 마약들은 정말 최악이다. 그것은 그저 얼간이 같은 여행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빠져든 사람들을 비난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사회적인 그리고 감정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될 수 있는 한 피해야 하는 것들이다.

초현실주의는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내 머리 속의 이미지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이다.

즐기면서 낭비한 시간은 낭비된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당신이 다른 계획으로 바쁠 때 당신에게 벌어지는 것들.

이미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 수는 없다.

이 사회에서 나나 모든 예술가나 시인의 역할은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끼는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나 리더로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거울로서.

이 사회는 비상식적인 목적을 가진 비상식적인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나는 우리가 미치광이들의 광적인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보고, 그것을 표현한 것에 대해서 나 또한 미치광이라고 불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상식적인 이유이다.

음악은 모든 이의 소유이다. 출판업자들 만이 그것을 개인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한다.

우체부가 사인을 원한다. 택시 운전수는 사진을 원한다. 웨이트리스는 악수를 하기 원한다. 모든 사람들이 너의 일부분을 원한다.

우리는 예수보다 더 인기 있다. 락과 기독교 둘 중 어느것이 먼저 사라질지는 모른다.

우리는 사랑을 선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귀한 식물과도 같다. 그냥 받아서 찻장 같은 곳에 넣어 두기만 할 수는 없다. 계속 물을 주어야 한다. 그것을 정말로 보살피고 가꾸어야 한다.

우리는 60년대에 모두 한배를 타고 있었다. 그 배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고 비틀즈는 그 배의 망루에 있었다.

우리가 하려는 말은 평화에게도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예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지루하고 평범했다. 그러한 왜곡이 모든 것을 망쳐 놓는다.

신은 우리의 고통을 측정하는 척도가 되는 개념이다.

신문사의 사람들은 신문을 팔기 위해 너를 첫 페이지에 게시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신문을 많이 팔고 발행 부수가 많아지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큰 일을 해주었는지 봐라.’.

소유란 법의 구십 퍼센트가 아니다. 그것은 문제점들의 구십 퍼센트이다.

성공하기 위해서 개 자식이 되어야 한다면 비틀즈는 지구의 가장 못된 개 자식들이다.

사랑할 때 모든 것이 더 명백해진다.

사랑은 자라게 해주어야 하는 꽃이다.

사랑은 약속이며 기념품이다. 한번 주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절대로 그것이 사라지게 하지 말라.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정말 기본적인 것은 우리가 왜 약을 먹느냐 이다. 우리는 왜 이러한 액세서리를 평상 생활에 동원하는가? 이 사회의 뭔가가 우리를 그렇게나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인가?

부자라서 느끼는 죄책감 그리고 사랑과 평화로도 충분하지 못해서 어디 가서 총이라도 맞아야 한다는 죄책감.

물에 빠졌을 때 ‘누군가 내가 물에 빠진 것을 알아채고 나를 도와 준다면 정말 좋을 텐데’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소리를 지를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아라. 나를 몽상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유일한 몽상가는 아니다. 언젠가 너도 우리와 합류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하나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또 하나의 텔레비전 대신에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가 있을 것이다.

락에 새로운 이름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Chuck Berry’일 것이다.

더 많이 볼수록 확실하게 아는 것이 더 적어진다.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고 바쁠 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누군가 사랑과 평화가 60년대의 진부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랑과 평화는 영원하다.

너를 나의 팔로 안고 나의 손가락이 너의 방아쇠에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행복은 따뜻한 총과 같기 때문이다.

너가 무엇을 하던지 항상 혼자이다. 자기 자신의 신과 자신만의 신전에 도달해야 한다. 모두 너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너가 누구인지 말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너는 그저 너일 뿐이다!

나이든 세대들이 이 나라를 파멸로 질주 시키고 있다.

나의 한쪽은 나 자신이 실패자라고 의심하며 다른 한쪽은 나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머리가 얼마나 긴지, 나의 피부가 무슨 색인지, 내가 여자인지 또는 남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신을 믿는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로 믿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사는 늙은이로서 믿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신이라 부르는 것이 우리 안의 무엇인 것 같다. 나는 예수와 모하메드, 그리고 부처가 한 말이 옳다고 믿는다. 그 말들의 해석이 잘못 되었을 뿐이다.

나는 무엇인가 따르기 위해 나의 모습이나 느끼는 바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별난 사람이었다. 나는 한 평생 별난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나는 모든 것을 그것이 반증 될 때 까지 믿는다. 그래서 나는 요정, 전설, 용의 존재를 믿는다. 그것들이 머리 속에만 있다 해도 모두 존재한다. 그 누가 꿈과 악몽이 사실적이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락과 기독교 중 어느 것이 먼저 사라질지는 모른다.

나는 더 이상 공연하는 벼룩 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꿈을 엮어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계속 활동을 하더라도 시간당 20,000마일 씩 뛰면서 내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40살에 죽고 싶지는 않다.

기독교는 줄어들고 사라질 것이다. 그것에 대해 논쟁할 필요는 없다. 나의 주장이 옳고 그것이 옳다는 것은 증명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예수보다 더욱 인기가 많아졌다. 락과 기독교 둘 중 어느것이 먼저 사라질지는 모르겠다.

극단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것이 내가 하는 행동과 음악을 믿는다는 의미라면 나를 그렇게 불러주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신용한다.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그것은 태풍의 눈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콘서트 도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나의 배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뼈대를 만들어 준 것은 나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모든 끼니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자는 모습, 내가 그를 바다에 데려 갔을 때 물고기처럼 헤엄친다는 사실. 나는 그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살인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관례는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유행이다. 나는 유행에 별로 관심이 없다.

60년대는 우리에게 가능성과 책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해답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가능성을 흘끗 보게 해주었을 뿐이다.

스펜서

아름다움이란 경솔한 사람이 그릇생각하듯이 보이는 그대로 외관만의 치레는 아니다.

사람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

허버트 스펜서

정치적인 변혁은, 커다란 저항을 진압한 뒤가 아니면 결코 행해서는 안된다.

사회는 그 구성원의 이익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그 구성원들이 사회의 이익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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