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고래! 고래를 보면 항공기술이 보인다!

파란 하늘 가득 구름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불쑥 튀어나온 고래의 꼬리가 보인다.

고래가 구름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바다에 사는 고래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니?

과학자들은 이런 엉뚱한 상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물론 실제로 고래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바다 속을 헤엄치는 고래는 모두 공기나 물에서 뜨기 좋은 모양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상어나 돛새치, 돌고래가 물의 힘을 이기는 비밀을 파헤쳐 비행기에 적용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과학자들은 혹등고래의 빠른 몸놀림에서 비행기 날개의 원리를 찾았다.

혹등고래는 큰 몸집을 가졌지만 먹이를 쫓을 때 엄청나게 빨리 움직인다.

심지어 전속력으로 헤엄치다가도 순식간에 180도 방향을 돌릴 수도 있다.

혹등고래가 물 속에서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비밀 무기는 바로 앞 지느러미다.

혹등고래의 앞 지느러미에 나있는 돌기는 비행기 날개의 소용돌이 발생기(vortex generator)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소용돌이 발생기란 항공기 날개에 한 줄로 솟아 있는 아주 작은 판이다.

이것은 비행기가 잘 떠오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보통 비행기 날개는 위로 볼록한 모양을 갖고 있어 아랫면보다 윗면에서 공기가 더 빨리 흐르고, 그 결과 윗면의 압력이 줄어들어 위로 떠오르는 힘(양력)이 생긴다.

그런데 날개가 미끈하면 윗면으로 흐르는 공기가 날개 끝까지 흐르지 못하고 도중에 흩어져 버린다.

이렇게 되면 양력이 감소해 비행기는 더 많은 연료를 써야 하는데 소용돌이 발생기가 이것을 막는 것이다.

만약 날개에 공기의 흐름을 막는 물체가 있다면 그 뒤로 소용돌이가 발생한다.

이는 날개 위로 흐르는 공기를 천천히 흩어지게 해서 위로 떠오르는 힘을 증가시키고, 공기의 저항도 줄이는데, 고래 지느러미에 나온 돌기가 항공기의 소용돌이 발생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덕분에 고래는 물의 저항을 덜 받고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

고래와는 달리 상어에겐 소용돌이가 반갑지 않은 존재다.

엄청난 덩치를 가진 고래는 양력이 있어야 바다 속을 잘 헤엄칠 수 있지만, 이미 날씬해질 대로 날씬해진 상어는 떠오르는 힘보다는 전속력으로 앞으로 나가는 힘이 필요하다.

물속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는 오히려 앞으로 나가는 데 방해가 된다.

그러면 상어는 어떻게 이런 소용돌이를 피해가며 빨리 헤엄치는 것일까.

1980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랭글리연구소는 상어 비늘에 있는 미세돌기인 리블렛(riblet)에서 그 비밀을 찾았다.

상어 몸에 있는 톱니모양의 작은 돌기가 몸 주변에서 생기는 소용돌이를 밀쳐내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NASA는 상어 비늘을 모방한 필름을 붙이면 최대 8%까지 운동을 방해하는 힘(마찰저항)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상어비늘은 당장 이곳저곳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3M은 상어비늘의 원리를 본 딴 필름으로 캐세이 패시픽 항공사의 항공기 표면을 코팅했다.

스포츠용품 제조사인 스피도(Speedo)는 상어 비늘처럼 삼각형 돌기가 나 있는 전신 수영복을 개발해 2000년 올림픽대회부터 수영선수들의 옷차림을 바꿨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최해천 교수는 한 발 더 나가 돛새치의 비늘을 연구하고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돛새치는 물 속에서 가장 빠른 시속 110km를 낸다.

이것을 연구하면 항공기의 마찰저항을 줄이는 데 상어비늘보다 더 뛰어난 물질을 만들 수도 있다.

돌고래도 하늘을 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돌고래에는 상어처럼 미세돌기가 없지만 물살을 받으면 피부가 엠보싱 화장지처럼 울퉁불퉁해진다.

과학자들은 이런 피부가 상어의 비늘처럼 소용돌이를 밀쳐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 공군은 이를 모방해 항공기 날개에 수백만 개의 아주 작은 리블렛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항공기 날개가 돌고래 피부처럼 울퉁불퉁하게 변하면서 소용돌이 하나하나를 밀쳐낸다는 생각이다.

자연은 인류에게 영원한 스승이다.

바다에 사는 고래와 상어가 하늘을 나는 항공기를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하늘을 나는 고래는 상상 속에나 있을 것 같은 풍경이지만 과학의 눈으로 살피니 다른 점이 보였던 것이다.

엉뚱해 보이는 생각에서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과학의 힘이다.

글 : 이영완 조선일보 과학전문기자

2009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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