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6월 19일 오늘의 명언

이은미

S(서태지)는 가수가 아니라 마케터처럼 보인다. 그가 그렇게 제대로 된 사운드의 하드코어를 들려주고 싶었다면,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면, 그는 분명 무대에서 노래를 했어야 한다.

지방 소도시 사람들에게도 라이브로 노래를 듣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혁명이다

좀더 자극적이고 좀더 선정적인, 그래서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방영되더라도 대중이 리모컨에 손 대지 않도록 해야 하는 뮤직 비디오가 있어야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 개인기라도 한 번 할 수 있으며, 그런 비디오를 제작하고 있어야 가수는 볼 품 없더라도 그 연기자들을 취재하러 나오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에 한번 더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제작자들은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명감도 물론 있겠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장사꾼이다. 장사꾼들은 이익이 보이는 장사를 선호한다. 투자가 많으면 그 만큼 빨리 뽑아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 아닌 사명인 것이다.

전에는 제가 좋아서 제 나름대로 즐기면서 한 것이라면… 널 지켜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네 재능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 그 얘기가 가장 큰 힘이었어요. 해머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어떤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일어서긴 한 것 같지만 공연을 열어봐야 알 것 같다.

이은미 공연은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극장에서 들어도 최고의 사운드가 나올 수 있게 신경 많이 썼습니다

얼마 전 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가수 K가 “저, 노래 못해요. 근데 가수가 노래만 잘 해야 합니까?”…물론 우스개로 한 소리였겠지만 그게 가수가 할 얘기였나 싶다. K의 콘서트에는 노래가 1/3이다. 나머지는 K의 수다와 애드립 가득한 말장난으로 채워진다. 10년 전의 K는, 아니 3년 전의 K는 그렇지 않았다. 대학로에서 진지하게 노래를 하고 고음처리가 매력적으로 되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가수’였다.

언제부터인가 가수에게 뮤직 비디오는 필수불가결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반드시 꽤 인기가 있는 연기자들을 떼로 등장시켜 외국에 나가 총을 들고 한바탕, 그야말로 쇼를 보여줘야한다.

아무리 멀티풀한 능력을 주문받는 사회라지만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 떼어주는 분은 그것을 열심히 잘하면 되는 것이고, 관 짜는 분은 열심히 관 짜고, 가수는 노래 잘하고 백댄서는 춤 잘 추고, 코미디언은 웃기면 되는 것이다. 가수가 다할 수 없고, 다 잘할 수 없으며, 다 잘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노래를 할 수 있는 무대가 없다

배우가 광고만 찍어도 용서가 되고..가수가 가장 기본적인 발성이 되지 않아도 용서가 되고. 그런 사람들을 프로로 부르는 세상이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이 너무 지겨웠고, 지쳤었죠.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 가수의 음반을 내는 데에는 최소한 7~8천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그것도 스스로 곡을 만드는 싱어 송 라이터의 경우이고 곡값이 꽤 나가는 작곡가의 곡을 쓰는 경우라면 총 제작비는 훨씬 뛰어넘는다.

문제는 없어보인다. 대중이 원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면죄부도 있다. 하지만 대중의 기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온전히 대중의 문제만은 아니다. 고만고만한 가수들을 양산해내는 제작자의 문제가 가장 크다.

많이 뽑아내려면 많이 팔려야 하고, 많이 팔리게 하려면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를 만들어 노래방 1위 하는 것은 가수로서 영예가 아니다. 대중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따라 부르기 어려워도 마음을 울리는, 그래서 10년이 지난 어느 날에도 지나치듯 들린 그 노래 하나로 시린 마음 쓸어내릴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만들어 대중의 마음 속에서 숨쉬는 그런 가수가 영예로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미니 콘서트에 나온 그룹 S(ses)였다. 콘서트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단 한 곡도 자신들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들이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 앨범의 의상 컨셉은요~”가 전부였다.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단 두 개이다. <수요예술무대>와 <이소라의 프로포즈>.

대한민국 방송국이라는 커다란 메커니즘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악순환의 고리 안에서 헤매고 있을 수밖에.

대중은 미친 개다. 나는 항상 그렇게 말한다. 대중의 취향은 럭비공처럼 예측을 할 수도 없고 진지하게 따라갈 수도 없다.

대부분 잊혀지는 그들 중 잘되면 제작자고, 안되면 헛된 인기의 맛을 잊지 못하는 폐인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왜 요즘의 댄스가수라 불리우는 가수들이 스스로를 가수라고 칭하는지에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일생을 통틀어 녹음할 때 말고는 노래라고는 하지도 않고 특별히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 댄스, 그 잘 추지도 못하는 춤 때문에 숨을 허덕인다며 작동도 되지 않는 마이크를 꽂고 나와 흐느적거릴 것이었다면 과연 그들은 정말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매일 러닝 머신 위에서 최소한 두 시간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기초 체력 없이는 콘서트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화인양, 영웅인 양하는 S(서태지)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S가 팀으로 활동을 할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니까. 시대의식 있는 노래와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한 것은 높이 살 만하지만 그때부터 댄스그룹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수들 때문에 열심히 하는 음악인들의 기회마저 박탈당해요. 방송에서 그렇게 얼굴을 비추면 누가 그 가수의 공연에 가고 싶어하겠습니까? 누가 그 공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겠습니까?

가장 큰 문제는, 획일화된 가수들만 봐야하는 시청자들의 곤혹도 곤혹이지만 소모품이 되어 인생 자체가 한낱 해프닝이 되고 마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자각이 없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가수와 연예인의 사이는 굉장히 멀고 굉장히 가깝다.

가수는 무대 위에서 인정받아야한다.

가수가 될 것인지 연예인이 될 것인지 분명하게 정한 후에 이름을 걸어야 한다.

10대의 지갑을 털어야하고 그 지갑을 열게 하는 정답도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10대의 기호에 딱 맞는 인물을 가려내 온갖 개인기를 연마시키고 한두 마디 애드립으로 10대의 목젖을 흔들 유머를 교육시키면 된다. 그렇게 생산된 가수를 오락 프로그램에 내보내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고 웃기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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