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미국의 ‘화성 기후 궤도선’이 화성에 진입하며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1억2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 가까이 되는 거금을 들여 만든 우주선이 286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것이다.
이 사고의 원인은 통일이 안 된 단위 문제였다.
록히드마틴사가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야드를 기준으로 설계한 우주선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미터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NASA가 잘못 계산한 추진력 탓에 탐사선은 예정된 100km보다 낮은 60km 궤도에 진입하며 대기와 마찰을 일으켜 폭발하고 말았다.
미터법이 대체 뭐길래 우주선의 생사까지 좌지우지하는 걸까.
미터법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시민혁명과 더불어 탄생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700~800개의 도량형이 각 분야별로 쓰이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이름이라도 도시나 마을별로 그 양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파는 ‘멸치젓 한 바구니’와 부산 자갈치 시장의 한 바구니 무게가 아예 다른 셈이다.
그러다가 시민들이 왕권을 무너뜨리고 주권을 잡으며 도량형 통일에 나섰다.
과학자들은 정교한 기기를 이용해 거리, 무게, 시간 등 각종 단위의 기준을 정했다.
예를 들어, 당시의 1m는 지구의 극에서 적도까지 가장 짧은 거리를 1000만 분의 1로 나눈 것이다.
1875년 국제적으로 ‘미터협약’이 체결되면서 미터, 그램 등을 포함한 미터법은 세계의 도량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1983년에는 변하지 않는 빛의 속력을 이용해 1m의 크기가 새롭게 정의됐다.
지구의 크기는 측정하는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1m는 빛이 진공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움직인 거리를 의미한다.
올해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평, 돈, 근 같은 예전 도량형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아파트의 넓이를 표기할 때 ‘32평’이 아닌 ‘105.79㎡’이라고 써야 한다는 얘기다.
익숙했던 명칭을 버리고 미터나 그램 단위만 써야 하니 역시 불편하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도량형이 통일이 안 되면 화성 궤도선 사건처럼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정교함이 생명인 과학 분야에서는 도량형 통일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화성탐사선 사건을 계기로 도량형 통일의 필요성을 깨달은 NASA는 올해 1월, 달 탐사에 미터법을 쓰겠다고 공표했다.
또 우리나라나 유럽, 일본의 우주국은 모두 미터법을 따르고 있다.
이제, 미터법은 국제를 넘어 우주 표준으로 자리잡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