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 우주유영, 그 뒤 숨겨진 이야기

다양한 우주 탐험과 실험을 진행하는 데 있어 우주인들은 목숨을 건 노력과 용기를 가져야 할 때가 많다.

특히 초기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이 한참일 때 미국과 소련의 우주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상대국가보다 뛰어난 기술적인 업적을 이루기 위해 지금 보기에는 무모하다고 할 수밖에 볼 수 없는 도전을 해야만 했고, 이런 도전 와중에는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하고 위기에 순간에 빠지기도 했다.

인류 최초로 우주유영(Space walk)에 성공한 구소련의 ‘알렉세이 A.

레오노프(Alexei A.

Leonov)’의 경우도 인류 최초의 우주유영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세우고도 자칫 잘못했으면 우랄 산맥 그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뻔 했다.

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 성공에 이어 1961년 4월 12일 최초의 유인 우주선인 보스토크 1호를 통해 유리 가가린(Yuri A.

Gargarin)을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우주개발 초기 경쟁국이었던 미국을 제치고 모든 부분에서 최초의 기록을 갈아치운 소련은 1인용 우주선인 보스토크호를 더욱 발전시켜 1명 이상이 탑승할 수 있는 우주선인 보스호트(Voskhod) 우주선을 개발하였다.

보스호트(Voskhod)우주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보스토크 우주선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1명 이상의 우주인 탑승이 가능한 부분과 우주선의 기밀 기술이 발전하여 비행 중에 우주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또한, 지구 재진입에 있어서도 보스토크 우주선의 경우 우주선 조종사들은 재진입할 때 우주선에서 직접 뛰어내려 낙하산으로 착륙해야 했지만, 보스호트 우주선은 착륙할 때 역추진 로켓과 낙하산을 이용해 착륙하게 됨으로써 지금의 소유즈 우주선과 같은 방식으로 착륙하게 되었다.

우주선의 발사와 우주공간에서 우주인의 신체 변화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우주인의 생의학적 자료를 모으기 위해 발사되었던 보스호트 1호에 비해 보스호트 2호는 세계 최초의 우주유영을 위해 발사되었다.

1965년 3월 18일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07시 발사된 보스호트 2호에는 우주선을 조종하는 소련 공군 소속 파울 벨라에프 대령과 우주유영의 임무를 맡은 알렉세이 A.

레오노프 중령이 탑승했다.

알렉세이 A.

레오노프는 1953년 소련 공군에 입대하여 전투기 조종사로 복역하다 1959년 우주 비행사로 발탁되어 1965년 우주유영의 임무를 안고 우주로 비행하게 된 것이었다.

알렉세이 A.

레오노프는 지구의 크림반도(우크라이나 반도) 상공 177㎞에서 에어록을 열고 우주선 밖으로 나와 우주선에 달린 밧줄로 몸을 묶고 약 12분 동안 우주선과 지구를 관찰하며 활동사진(홍보 영화)을 찍고 우주유영을 연습한 뒤, 서부 시베리아 상공에서 다시 우주선으로 복귀했다.

이때 알렉세이 A.

레오노프는 시속 28,000km의 속도로 약 5,000km를 이동하여 최초의 우주유영과 함께 맨몸으로 가장 빠르고 먼 거리를 이동한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우주유영 기록을 세운 알렉세이 A.

레오노프의 지구 귀환길은 그 영광에 걸맞지 않게 위기와 고난의 순간이었다.

최초의 우주유영 임무를 마친 뒤 약 26시간 동안 지구를 17바퀴 돈 레오노프는 귀환선을 타고 1965년 3월 19일 그리니치 표준시로 09시 02분에 우랄 산맥 근처의 숲 속에 귀환했다.

하지만, 귀환 도중 우주선의 난방장치가 고장이 나고 냉각장치만 작동하게 되었고 귀환선은 평지에 착륙하지 못하고 우랄 산맥 깊은 전나무 숲에 불시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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