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잘데기없는 내 생각

쓰잘데기없는 내 생각

구름 한점 없는 가을날

지리산 피아골 가는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피아골 골짜

기에서 흘러오는 도랑물 건너 왼쪽에 아주 작은 대숲 마을

이 하나 산 중턱에 있습니다 혹 그 마을을 눈여겨 보신 적

이 있는지요 그 마을을 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 중

에, 정말 오만가지 생각들 중에 아, 저기 저 마을에다가

이 세상에서 나만 아는 한 여자를 감추어두고 살았으면 ‘거

을매나 좋을꼬’ 하는 생각이 바람 없는 날 저녁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혹 댁도 그런 생

각을 해보셨는지요 어디까지나 이것은 ‘혹’ 이지만 말입니다

나도 이따금 저 마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런 쓸쓸하고

도 달콤한, 그러나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나 혼자 할 때가

다 있답니다 아내가 이글을 보면 틀림없이 느긋한 얼굴로

“그래요 그러면 잘해보세요”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 마을에 지금 가을이 한창이고 지금은 산그늘이 간이

다 서늘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저 마을로 올라가는 이 세상

에서 내가 본 길 중에서 가장 신비한 꼬불꼬불한 외길에도

산그늘이 내리면서 희미하게 길이 묻히려 합니다 그 가늘

디가는 길 왼쪽에는 지금 산비탈을 따라 작은 논다랑지 벼

들이 노란 병아리처럼 층층이 마을을 따라 올라가며 물이

들었습니다 노란색 주에서 나는 저 벼 익어가는 노란 색을

제일 좋아합니다 초가을이면 저 노란 벼들을 보면 이루 헤

아릴 수 없는 오만가지 생각들 중에서 나는 한가지 생각도

건지지 못하고 벼가 다 넘어지도록 설레기만 한다 맙니다

만, 그나저나 옛날에 저 흰 실밥 같은 외길에서 새로 시집

온 새색시가 외간 남자와 딱 마주쳤을 때는 어떻게 서로

비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그 실

밥 같은 외길에도 숨쉴 곳은 있습니다 그 외길 중간쯤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는데요 그 감나무 밑에는 용케도 커다

란 바�덩이가 하나 있어 그 바�덩이 옆에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까지 발걸음을 잘 맞추었겠거니, 거기에

다가 사람들은 숨을 쉬었겠거니 하는 생각이 내 생각입니

경제도 어려운데 이런 생각이 그 얼마나 쓰잘데기없는

생각인지요

여기까지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는 지 우리 어

머님이 이불 꿰매다 검은 머리에 얹어둔 실밥 같은 외길이

가물가물 깜박깜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쓰잘데

기없는 내 생각도 여기에서 가물가물 사라지려 합니다 그

러나 발걸음이 요량대로 잘못 맞추어졌을 때는 어떻게 하

였을까 당최 생각이 안 나눙만요 또 다만입니다만 그러 때

딱 마주서서는 어떤 남정네는 해 넘어가는 지리산 그 어떤

산날망을 킁킁하며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어떤 새색시는

눈을 내리깔고는 그 가늘디가는 길바닥을 내려보며 안절

부절 몸 둘 데를 몰라 했는지 모르지요 아무튼 해는 져서

어두우니 그들을 그냥 거기다가 세워두고 나는 갈랑만요

내가 가는 길이야 얼마든지 비낄 수 있는 길이니까요 허지

만 가기 전에 그 감나무 아래 아주 좁은 공터에다가 크게

숨이나 한번 푹 쉬고 갈라요

지리산 피아골 가는 길 초꺼듬 왼쪽 도랑물 건너 산 중

턱에 있는 아주 작은 대숲 마을을 보셨는지요 보셨다면은

그 마을이 소생에게 이런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하게 한 마

을이구나 하며 그냥 흘긋 스치십시요

거길 누구랑 갔냐구요

이 세상에서 절대 그냥 비낄 수 없는 사람이랑 같이 갔

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