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비

나 비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 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너를 감추고 있기 때문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게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너는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나비가 그 날개짓 때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내 그리움 때문

길위에서의 생각

길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도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위에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