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잔을 찾듯

목마르게 당신이 그리운 밤이 있습니다.

절반은 꿈에서 당신을 만나고

절반은 깨어서 당신을 그리며

나뭇잎이 썩어서 거름이 되는 긴 겨울동안

밤마다 내 마음도 썩어서 그리움을 키웁니다.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 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 백 예순 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 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로 불어오십니다.

종이배 사랑

종이배 사랑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 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낯선 섬의

감탕밭에 묶여 있는 시간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바람결에 종이배에 실려 보냈다 되돌아오기를 수십번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