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나무 1

푸른 나무 1

김용택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 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에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 아래.

칠보에 오는 눈

칠보에 오는 눈

1996년의 겨울

직행버스는 그냥 지나가고

군내버스만 쉬는

칠보 정류장에 눈이 내린다

눈은 내리며 땅에 떨어져 녹고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 위에 잔돌들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검버섯 핀 손등들처럼 차디차게 얼음을 뒤집어쓴다

그 위에도 눈은 내린다

주름진 얼굴 같은 양철지붕 아래

손 대면 양철 녹처럼 부스스 떨어질 것만 같은 얼굴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눈송이들을 건너다보며

오지 않는 차를 기다린다

차를 기다려도 차는 저 산모퉁이를 돌아오지 않고

이따금 눈보라만 하얗게 몰아쳐온다

때묻은 수건으로 머리와 귀를 싸매고

보퉁이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

시꺼먼 실장갑 낀 손으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큰물에 떼밀리고 떼밀려 떠내려온 해묵은 지푸라기들처럼

기약없이 차를 기다리다 지쳐

주름진 얼굴들이 하얗게 부서지는가

손과 얼굴이 조금씩조금씩 눈송이가 되어

풀풀풀 흩날릴 것만 같은데

기다리는 차는 오지 않고 눈만, 칠보에 눈만 온다

“어이,추워,날씨가 사람잡것네 사람잡아,차가 안 올

랑개비여”

차부 안으로 들어서며 온몸으로 눈을 털며 둘러보지만

연탄 난로 하나 없는 낮은 처마 밑

발 시린 땅바닥까지

눈송이들이 날아와 시린 땅에 내려앉기가 바쁘게 사라진다

눈이 내린다

칠보에 저렇게 오는 눈을 어쩌랴

이제 이 차부에서는 그 무엇을 기다릴 것도

더 떠나보낼 것도 더는 없고 어느덧 어둠만 스며든다

어둠만 흔적없이 찾아와 뽀얀 전등불들을 하나둘 밝힌다

그 불빛 안으로 눈송이들이 우우 쫓겨 몰려왔다가

우우 하얗게 쫓겨난다

차창에 불빛도 없이 직행버스가 한대 체인 소리를 내며

어두워져오는 눈길을 달려간다

차는 끝내 오지 않을 모양이다

눈송이들은 어 눈 위에 떨어지고

눈송이들이 차디찬 손등에도 떨어져 눈물이 되어 다시

언다

할머니 한분이 마지막으로 보퉁이를 끌어안고

어둡고 낮은 하늘 끝으로 눈이 되어 사라지고

하늘과 땅이 맞닿아 이 세상은 눈뿐인데

어쩌랴 저렇게 칠보에 오는 눈을

칠보가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