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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雪)
홍경자
차고 슬픈 것이 묻어난다
낡고 탈색된 빨랫줄처럼 세어진
어머니의 가르마 너머
유년의 쓸쓸한 언덕배기 위로
표정없는 무명지 나부끼던 만사
마음의 집 어디 빈 가지 걸리고
아버지 화장터에 잠 재우고 돌아오던 날 밤
등 뒤로 빗장 질러 잠근
그 캄캄하고 육중한 시간들
저벅저벅 걸어온다
뿌옇게 휘몰아친 시린 모롱이
그늘진 산자락 한 켠이
며칠 째 잔뜩 뭉개어 지고
차고 슬픈 것이 흐릿하게 접힌다
이개어 바르고 또 바른
망각의 덧칠 긁어내고
일어 선 빗장 속 암울한 기억들 위로
균열의 의미 내린다
빛 바랜 어머니의 가르마 틈 새
얼어 붙은 혹한의 가슴뼈를 벌리고
형체도 없는 슬픔같은 것이
번쩍이며 쌓인다
물컹해진 그 간의 집이 허물어 내린다
가을 노래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가을 노래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