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거리에서

거리에서거리에서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도 시 한복판에서

모두가 타인인 곳에서

지하도 난간 옆에 새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남자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거리에서 한남자가 울고 있다

한 세기가 저물고

한 세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모두가 타인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신이 눈을 만들고 인간이 눈물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역시 그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그에게

무언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눈물이라고

겨울 날의 동화

겨울 날의 동화

1969년 겨울, 일월 십일 아침,

여덟시가 조금 지날 무렵이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마당 가득 눈이 내렸다

내가 아직 이불 속에 있는데 엄마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넌 아직도 잠만 자고 있니!

나는 눈을 부비며 마당으로 나왔다 난 이제 열살이었다

버릇 없는 새들이 담장 위에서 내가 늦잠을 잔 걸 갖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외박 전문가인 지빠귀새는

내 눈길을 피하려고 일부러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눈은 이미 그쳤지만 신발과 지붕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나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어 집 뒤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붉은 열매들이 있었다

가시나무에 매달린 붉은 열매들 그때 내 발자국소리를 듣고

가시나무에 앉은 텃새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 난 갑자기 어떤 걸 알아 버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내 삶을 지배하게 될 어떤 것이,

작은 붉은 열매와도 같은 어떤 것이

나를, 내 생각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후로 오랫동안

나는 겨울의 마른 열매들처럼

바람 하나에도 부스럭거려야 했다

언덕 위에서는 멀리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는 얼고 그 위에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 붉은 잎들 좀 봐,

바람에 날려가는! 저수지 위에 흩날리는 붉은 잎들!

흰 눈과 함께 붉은 잎들이 어디론가 날려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해 겨울의 마지막 남은 나뭇잎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