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훈(劉光勳) – 함남 함흥

성명 유광훈
(劉光勳)
독립운동계열 군자금모집
출생 1899.11.27 출생지 함남 함흥
사망 1937.2.5 사망장소
훈격 애족장 훈격년도 90
공적내용
함남 함흥(咸興) 사람이다.
부친 유 유(劉惟)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매국적을 처벌하라는 ‘고충가하(孤忠可賀)’라는 상소문을 올려 그 내용이 대한매일신보(1905. 12. 27字)에 게재되기도 하였다.
그후 가족을 이끌고 노령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였다.
일군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자 길림성 밀산(吉林省密山)으로 옮겼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러한 부친을 따라 전전하였다.
1921년에는 왕청현 춘화향 봉의동(汪淸縣春華鄕鳳儀洞)에서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를 조직하여 도독이 되었으며, 대원 100여명을 무장시켜 항일투쟁에 참가하였다.
1923년에는 북경에서 이화정(李華亭)·김정묵(金正默) 등과 안정문(安定門)안의 약시호동( 匙胡同)에 대한독립의용단(大韓獨立義勇團)을 조직하였으며, 단장 이화정, 부단장 김정묵 등과 상의하고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국내로 파견되었다.
1923년 9월에 경북 성주·선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북경으로 귀환하였다.
, 1924년 1월 하순에 재차 입국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성주·서산 및 상주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24년 9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고, 1927년 5월에 만기 출옥하여 다.
만주로 건너갔다.
만주에서는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무장항일투쟁을 계속하였으며, 1928년 3월에 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참의부의 3부가 통합하여 국민부(國民府)를 조직하게 되자, 그는 심용준(沈龍俊) 등과 함께 참의부 대표로 참가하여 3부통합에 기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이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註·판결문(1924. 9. 26 대구복심법원)
·판결문(1924. 7. 24 대구지방법원)
·고등경찰요사 128면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446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133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753·754·755·756면
·동아일보(1927. 5. 6)

출처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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