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金漢鍾) – 충남 예산

성명 김한종
(金漢鍾)
독립운동계열 광복회
출생 1883.1.14 출생지 충남 예산
사망 1921.7.8 사망장소 대구형무소
훈격 독립장 훈격년도 63
공적내용
충남 예산(禮山) 사람이다.
유가(儒家) 출신인 그는 1906년 민종식(閔宗植)의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종군하였으며 1917년에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대한광복회는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1915년 통합하여 결성된 혁명단체였다.
동회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滿洲)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확보한 혁명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때 행동지침은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이었고, 각처에 곡물상을 설립하여 혁명기지로 삼는 한편 혁명계획은 군자금 조달, 독립군 및 혁명군의 기지건설, 의협 투쟁으로서의 총독처단, 친일부호 처단 등으로 추진되었다.
대한광복회의 충청도 책임자였던 김한종은 박상진(朴尙鎭)과 함께 친일부호 처단을 주관하였다.
그는 동지포섭에 힘을 쏟으면서 군자금을 수합하는 한편 친일부호 처단을 위해 장두환(張斗煥)·엄정섭(嚴正燮) 등과 함께 충청도 지방 부호들의 명단을 작성하였다.

또 1917년 11월 칠곡(漆谷)의 부호 아산군(牙山郡)의 장용숙(張容淑)을 처단할 때 참여하였으며 1918년 1월에는 그의 지휘 아래 당시 악질면장으로 지목되어 처단대상이었던 충남 아산군(牙山郡) 도고면장(道高面長) 박용하(朴容夏)를 김경태(金敬泰)·임봉주(林鳳柱) 등이 처단하게 하였다.
그후 동회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1918년초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1년 8월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註·예심종결결정서(1918. 10. 19 공주지방법원)
·기려수필 318면
·고등경찰요사 180·181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2·458·496·532면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97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75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527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673∼732면

출처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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