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소(黃鶴巢) – 황해 해주

성명 황학소
(黃鶴巢)
독립운동계열 임시정부
출생 (1879) 출생지 황해 해주
사망 미상 사망장소
훈격 애족장 훈격년도 2013
공적내용

1919년 황해도 해주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출감하여 192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을 위해 독립공채를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1927년 7월 신간회 해주지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19년 2월 28일 오전 8시경 김명신(金明信)이 서울의 박희도(朴熙道)에게 해
주(海州)와 옹진읍(瓮津邑) 소재 기독교 목사에게 조선독립선언서 450매를 전달
하라는 명을 받고 저녁 해주에 도착하여 해주면(海州面)의 황학소에게 선언서
350매를 전달하면서 3월 1일 독립만세시위 때 낭독할 것을 부탁하였다. 3월 1일
황해도 해주읍(海州邑) 남본정(南本町) 예배당에서 독립선언서 낭독과 대한독립
만세의 호창(呼唱)이 있은 뒤, 각 군에서도 독립만세시위운동이 잇달아 일어났
다. 이때 오현경(吳玄卿)은 모인 사람들에게 선언서를 배포하고 김창현에게 남
은 독립선언서를 우편으로 발송하게 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당일

그는 오현경, 김창현 등과 함께 해주경찰서에 구속되었다.
1919년 4월 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공소
하였으나, 6월 1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자 다시 상고하였다. 같은
해 8월 18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어 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5월 18일 출감하였다.
1921년 해주읍 교회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을 위해 독
립공채를 모집하던 중, 7월 이경호(李京鎬), 민관식(閔寬植), 김봉우(金奉右), 지
정신(池貞信)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25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년 7월 1일 해주 남본정 청년회관에서 신간회(新幹會) 해주지회를 창립하
고 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判決文(高等法院:1919. 8. 18)
·每日申報(1919. 4. 20)
·東亞日報(1920. 5. 25 1921. 7. 11, 8. 28 1927. 7. 5)
·朝鮮日報(1921. 8. 25, 8. 29)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1978) 제6집 509면, 제14집 295, 445, 447, 943, 972면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25, 228, 321, 333면

출처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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