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金聖灝) – 평북 선천

성명 김성호
(金聖灝)
독립운동계열 선천경찰서 투탄
출생 1898.1.14 출생지 평북 선천
사망 1961.3.27 사망장소 서울 영등포
훈격 독립장 훈격년도 63
공적내용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선천에서 만세시위를 주동하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1월에 출옥후 만주로 건너 가 정의군정사(正義軍政司)에 가입하여 사찰과(司察課) 서리로 임명되어 과장 강호연(姜浩連)과 함께 사찰원 50명을 지휘하였다.
1920년 8월 24일 미국 의원단 일행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만주 관전현(寬甸縣)의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는 일제의 주요기관을 폭파하고 일제 요인을 암살하여 한국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하여 결사대를 파견하였다.
제1대는 서울, 제2대는 평양, 제3대는 선천(宣川)과 신의주방면으로 파견되었으며, 제3대의 결사대원 이학필(李學弼)·임용일(林龍日)·김응식(金應植) 등 일행은 박치의(朴致毅) 등의 동지를 규합하여 선천경찰서 등의 폭파계획을 세웠다.
그는 제3대의 결사대원들과 행동을 함께 하였다.
그러나 국경의 경비가 강화되어 거사에 사용할 무기의 반입의 늦어진 때문에 미국 의원단이 선천을 통과하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이에 결사대원들이 다.
모여 상의한 결과 1920년 9월 1일 결사대원 한사람은 선천군청의 지적창고(地籍倉庫)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었고, 박치의는 9월 1일 새벽 3시에 이학필과 함께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파괴하고,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 등 수종의 유인물 수십매를 살포하고 피신하였다.
그러나 일경의 끈질긴 추적으로 이를 지원하였던 그를 비롯하여 20여명의 동지들이 동년 9월 7일까지 모두 체포되었으며, 그는 1921년 7월 2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7년 9월 25일 신병으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註·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17·308면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2면
·기려수필 296면
·무장독립운동비사 74면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549면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52면
·조선민족운동년감 58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34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851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81·182·640·645·646·647·650·651·652·653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27면
·동아일보(1927. 10. 2)

출처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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